보르도TV, 고급 가구 이미지 더해 '히트' … 융합으로 제품 가치 높여라

이경원 교수의 재미있는 트리즈 이야기 (20)
‘스마트’에 이어 ‘융합’이 화두다. ‘비빔밥 문화’처럼 다른 분야의 아이템과 융·복합해서 새로운 사업을 도출하거나 융합산업 육성,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융합해야 시장에서 성공할지는 좀 막막하다. 언론에서 성공한 융합 아이템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제품 경쟁력으로 실현시킨 IT융합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TV는 가전제품의 대명사이고 가격 대비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높은 상품이다. 한 번 사면 전기 요금 외에는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전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금성(Goldstar) 삼성(Samsung) 대우(Daewoo) TV는 소니 제품에 비해 값이 30% 이상 싸면서도 저품질 제품으로 인식돼 판매장 뒷전에 배치되는 서러움을 겪었다.그런데 요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삼성, LG TV가 일본 제품을 누르고 프리미엄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판매장에서도 전면에 배치되면서 세계에서 1, 2등 대접을 받고 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성공 배경에 관심이 높다.

우리 기업들은 LCD·PDP TV 평판패널 투자와 함께 디지털 기술을 과감하게 적용했다. 그런 다음 다른 분야의 아이템과 융·복합했다. 중간에 실패도 있었고, 실패 속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한 TV 개발자는 컴퓨터 프린터와 결합한 신상품이 성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TV 화면의 내용을 종이로 프린트할 수 있으면 소비자가 많이 만족할 것으로 기대해 고가의 프린터 겸용 TV를 출시했다. 그런데 이 TV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컴퓨터 대용량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와 결합한 신상품 TV도 출시했다. 축구 경기에서 골을 넣는 순간을 놓친 경우에 대비, TV 방영분을 매시간 녹화하고 있다가 다시 돌려서 본다는 광고도 했다. 그러나 성공했다는 소문은 못 들었다. 성공한 사례도 있다. 프랑스에서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지방의 이름을 딴 ‘보르도 TV’는 국내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되고, 세계 시장에서도 대박 상품이 됐다. 오늘날 삼성 제품이 세계 TV시장 점유율 1등이 되는 견인차가 됐다. 다른 회사들이 TV의 기술적인 측면 위주로 신상품을 기획한 데 비해, 보르도TV 상품 기획자는 새로운 가치에 주목했다. 대형 LCD TV가 가구로서는 별로 예쁘지 않다는 데서 착안, 고급 가구 이미지가 나는 TV를 개발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디자인을 강조해 와인 잔 모양을 모사한 감성적인 제품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융·복합하면 대부분 값이 올라간다. 가격 대비 새로운 가치의 비율은 구매의 결정적인 요소다. 보르도 TV의 초기 판매 가격은 300만원을 넘었다고 한다. 새로운 가치와 가격이 상반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트리즈적 개념을 활용, 고광택 가구의 플라스틱 사출 코팅 기술이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냈다. 이 기업을 지원해 가격을 많이 올리지 않으면서도 고광택 가구 이미지의 플라스틱 제품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공급망 관리(SCM) 방법을 활용, 적시에 부품과 제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300만대 이상 팔리는 베스트 셀러를 만들었다.

기술 위주의 신상품도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가격 대비 성능, 고객이 느끼는 감성적인 품질, 타이밍까지 잘 맞춰 판매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한국트리즈학회 총무이사 lkw@kp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