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가격통제, 또 하나의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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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인하 시장작동 불능초래…진입장벽 낮춰 경쟁유도가 순리“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광고 문구다. 광고의 메시지는 우리 몸을 의탁하는 침대는 일반가구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침대 스프링이 미세한 몸의 움직임을 잡아줘야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단순히 몸을 눕히는 가구를 ‘수면과학’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
올 들어 액화석유가스, 청량음료, 우유, 주류 등 소비재의 ‘가격인상 철회’가 잇따랐다. 형식은 ‘자발적 철회’다. 고통분담을 통해 정부의 물가안정 시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갑(甲)으로서의 정부의 ‘기업 팔 비틀기’가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최근의 물가정책을 침대 광고에 빗대면 “가격은 시장이 아닌 정부가 정해주는 것입니다”가 된다. 스프링 없는 침대를 파는 격이다. 물가안정이 우격다짐이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시장작동이 불가능해진다. 시장은 명령으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름 값이 묘하다”로 시작된 휘발유 가격과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나서서 ‘대량공동구매’로 ‘알뜰주유소’ 신청자에게 납품단가를 최대 70원까지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입찰에 정유업체가 응할 리 없다. 현재 입찰이 2회 유찰돼 수의계약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대량 공동구매를 주선하는 등의 ‘협동조합’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량 공동구매 여부는 사적자치 영역이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 억지로 가격을 낮추면 ‘과소비’를 부르고, 우리 경제를 ‘석유 중독’에 빠지게 할 뿐이다.
물가안정을 꾀하려면 가격인상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에 따른 농산물 공급 불안, 원자재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한다. 따라서 탄력 관세, 소비세율, 환율 등을 통해 1차적으로 충격을 완화해 주고 부득이한 경우, 가격인상을 허용하는 것이 순리다. 합리적 인상 요인을 억누르면 누군가 그 부담을 져야 한다. 직원과 협력업체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과점시장의 경우 도미노식 가격인상을 우려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최근 한 맥주회사가 가격인상을 시도했다 ‘정부 압력’으로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가격인상은 여의치 못했을 수 있다. 경쟁기업에 상당 부분 시장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가격을 안정시킨다. 가격인상 여부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가격의 등락은 시장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가격은 ‘정보전달 기능’을 수행한다. 특정 재화 가격이 올랐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해당 재화의 소비를 줄이고 대체재의 소비를 늘리라는, 공급자에게는 해당 재화의 생산을 늘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물가 통제는 성공한 적이 없다. 이는 경제학의 교과서적 지식이다. 1777년 미국 독립군은 밸리 포지 전투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독립군을 무력화시킨 것은 영국군이 아닌, 아군을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의회가 제정한 ‘가격통제법’이었다. 가격통제에 따른 군수물자 부족으로 독립군은 아사자를 냈다. 뼈저린 교훈을 얻은 미국은 1778년 대륙회의에서 ‘재화에 대한 가격통제는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법령을 제정하지 않는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최근 물가정책은 개발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기관’으로 자임한 것은 치명적 패착이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진입장벽을 낮추고 수입을 늘리는 등 경쟁압력을 높이는 것이 한 방법이다. 가격통제를 통해 물가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은 또 하나의 포퓰리즘일 뿐이다. 당국에 “물가정책은 과학이다”란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