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재정위기] "시장에선 이미 獨·佛 신용등급 강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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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밥 돌 부회장에 듣는다“시장에선 이미 독일과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걸로 간주하고 거래하고 있다. 실제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더라도 별 영향은 없을 것이다.”
단기 처방만 있는 유럽
유로존 해체는 없겠지만 위기 1년 이상 지속될 것
美경제 2013년이 문제
대선결과 따라 영향클 것…오바마는 성장 신경 안써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밥 돌 부회장 겸 수석 전략가(57)는 14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랙록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맡고 있는 돌 부회장은 “유로존 문제에 대한 긴급 처방은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어 시장은 계속 불확실성 속에서 헤매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도 유럽 이슈가 계속 시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년 유럽 재정위기 전망은.
“유럽의 지도자들은 충분한 긴급 처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해체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근본적인 처방은 없이 땜질만 지속할 것으로 생각된다. 유럽문제는 6개월 후나 12개월 후에도 물음표를 찍으며 계속될 것이다.”
▶유럽 재정 통합에 대한 의견은.“그 회의로 유럽 재정위기가 바로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합의된 내용(신재정협약)이 적어도 일부나마 우려를 해소했다고 평가한다. 위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나온 실재적(tangible)이고 긍정적인 진전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재정건전성 강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더 이상 실행을 미루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유럽중앙은행(ECB)에 보낸 점은 긍정적이다. ECB는 재정 통합에 실제 진전이 이뤄지면 더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본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남을까.
“그렇다. 물론 그리스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치느냐다. 유로존 리더들의 지원하에 질서있게 디폴트가 진행되면 문제가 없다. 반대로 그 과정에서 혼란을 일으킨다면 유로존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유로존 국가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독일의 신용등급 전망은.
“잘 모르겠다. 나는 신평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디스가 그리스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게 5개월 전이다. 그것은 2년, 5년 혹은 20년 늦은 조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준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신평사의 하향 조정 없이도 이미 시장은 (독일과 프랑스가) 강등당했다고 보고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은행들은 파산할까.“유로존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유럽 은행들에 계속해서 물음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자본 확충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내 예상으로는 유로존은 계속 ‘물음표’를 남기면서 힘을 합쳐나갈 것이다.”
▶미국 고용시장은 어떻게 보나.
“미국 기업들은 올해 170만명을 고용했다. 이에 따라 최근 실업률이 어느 정도 내려갔지만 의미있게 볼 만큼 충분히 하락하지는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실업률이 0.5%포인트 정도 줄었다. 지금은 완만한 고용 증가가 가능한 정도다. 내년 미국 경제는 올해와 비슷한 2%가량 성장할 것이다. 특별히 강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 민간 고용 등에서 최소한 긍정적인 뉴스가 부정적인 뉴스보다는 많을 것이다.”
▶미국 주택시장은 회복될까.
“그렇다. 경제의 고통이 줄어드는 만큼 주택시장 회복 추세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 하지만 큰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평평한(flatish) 모습을 보일 것이다.”
▶미국 신용등급은 강등될까.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의회 내 슈퍼위원회가 감축안 도출에 실패했지만 2013년에 예산 자동 삭감이 시작된다. 따라서 슈퍼위원회의 합의 실패 하나만으로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 같지는 않다.”
▶대선이 경제에 미칠 영향은.
“선거를 남겨놓고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내년에는 별 영향이 없다. 문제는 2013년 초다.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예산 및 세금 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길 원하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본 시장에 친화적이지 않다. 나라를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으로 나누고 있다.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소득 재분배에 치중하고 있다. 투자자로서 나는 성장친화적인 정책을 선호한다.”
▶미국 달러화의 위상은.
“달러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유럽은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일본은 쇠퇴하고 있다. 그 외 어떤 통화도 미국 달러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미국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정위기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 기간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소 완화됐다. 정부가 긴축을 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달 초 중국 정부가 지급준비율을 낮춘 것에서 알 수 있다. 앞으로 중국 정부가 성장률 제고에 나설 것이라는 신호다. 이는 경착륙의 가능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엔고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
“일본은 높은 저축률, 고령화, 노동인구 감소 등으로 계속 고전할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바꾸려면 수출을 늘리는 길밖에 없는데 세계 시장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내년 엔화 가치와 관련해서는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미국 달러가 엔화보다 강해질 것이다.”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은.
“미국은 완만하게 성장할 것이다. 유럽은 이미 경기 침체에 접어들었다. 몇몇 강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제로나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다. 세계 경제는 둔화 과정(slowing process)에 있다. 둔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만큼 내년 후반기부터는 경기 부양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세계 경제는 추세선(trend rate)을 하회하는 완만한 성장을 할 것이고 금융위기 이전의 평범한 해의 수준은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 블랙록은 3조3450억弗 자산 굴려
블랙록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자산 규모는 3조3450억달러로 한국 국내 총생산보다 2.4배 크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에서 근무하던 로렌스 핑크(59)가 1988년 설립한 회사로 뉴욕의 작은 사무실로 출발해 직원 수 1만200명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2006년 메릴린치자산운용, 2009년 바클레이즈자산운용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세계 1위 운용사로 발돋움했다. 경쟁사들과 달리 자기자본투자를 하지 않고 자산 운용으로 수수료를 받는 클라이언트비즈니스에 주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밥 돌 부회장 겸 수석전략가는 뮤추얼펀드인 오펜하이머펀드와 메릴린치자산운용을 거쳐 2001년부터 현직에 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