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진공관 앰프…마니아 전유물 아니에요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50년대까지 오디오 증폭기로 인기
트랜지스터 앰프에 밀려 '뒷방' 신세
음색 뛰어나…최근 다시 생산 늘어
홍콩 누아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무간도’ 시리즈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품이 있다. 바로 진공관 앰프다. 1편에서 두 주인공인 량차오웨이(梁朝偉)와 류더화(劉德華)가 운명적으로 만나는 장소는 오디오 상점이다. 진공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만 가수 차이친(蔡琴)의 ‘잊혀진 시간들(被遺棄的時光)’을 함께 듣는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2편에서도 진공관 앰프가 놓여진 음악감상실이 등장한다. 3편은 1편의 오디오상점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무간도뿐만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개봉했던 한국 영화에도 진공관 앰프가 빈번히 등장했다. 여고 동창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써니’를 비롯해 하녀, 파괴된 사나이, 홍길동의 후예, 오감도 등의 영화장면 한쪽에서 진공관 앰프를 찾을 수 있다. ●‘음색’ 뛰어난 진공관 앰프

많은 사람들이 진공관 앰프를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는 ‘유물’이나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동유럽,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여전히 ‘신품’ 진공관이 생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오디오 앰프에 쓰이는 진공관의 생산량이 되레 늘어났다고 한다. 이 진공관을 사용하는 앰프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디오 회사들이 내놓는 ‘DIY(Do it yourself) 키트’를 구입해 직접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앰프는 ‘증폭기(Amplifier)’란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소리를 크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장치다. CD, LP, DVD 등에 담긴 소리의 데이터를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증폭시켜준다. 앰프라고 하면 거창한 물건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소리를 들려주는 모든 기기에는 앰프가 설치돼 있다. 스마트폰, MP3플레이어 등에도 앰프는 들어가 있다.앰프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소리의 증폭을 조절해주는 ‘소자’다. 어떤 소자가 쓰였는가에 따라 진공관 앰프, 트랜지스터 앰프 등으로 구분된다. 1904년 진공관이 발명된 이후 50년 넘는 기간 진공관 앰프가 주를 이뤘지만 1948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1960년대 들어 이것을 이용한 앰프가 발매되면서 진공관 앰프는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게 된다. 진공관에 비해 트랜지스터 값이 훨씬 쌌을 뿐만 아니라 관리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유리로 만들어진 진공관의 특성상 파손이 잦았고 이때마다 매번 새로운 진공관을 갈아 끼워야만 했다.

하지만 트랜지스터 앰프를 택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진공관 앰프로 돌아왔다. 앰프의 역할은 앞서 말했듯 음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상적인 앰프는 모든 음을 똑같은 비율로 증폭시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소자의 ‘비직진성’ 때문에 실제 음원과는 미묘하게 다른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모든 앰프는 저마다 다른 ‘음색’을 갖게 된다.

진공관 앰프를 택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진공관이 주는 ‘음색’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랜지스터 앰프는 분명 진공관 앰프보다 음의 왜곡이 적다. 음원의 왜곡을 최소화해 신호를 정확히 재생하는 것은 트랜지스터 앰프가 더 뛰어나지만 진공관을 통해 나온 소리의 ‘밀도’가 더 높다는 것이다. 진공관을 갈아 끼우는 것만으로 다른 소리를 즐길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소리를 들려준다는 것도 진공관 앰프의 장점이란 설명이다.●PC, 스마트폰과 진공관 앰프의 만남도

진공관 앰프라고 하면 오래된 LP플레이어를 연결해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도 않다. 최근에는 PC-Fi, 심지어 Apple-Fi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고충실도(high fidelity) 음악 감상을 뜻하는 ‘Hi-Fi’에 각각 PC와 Apple을 합성한 단어다.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 기기와 앰프, 스피커를 갖추면 훌륭한 나만의 오디오가 탄생하는 셈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