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보름간 채권시장서 대량 매도, 4조3000억의 행방은…

"재투자 시기 저울질" vs "한국 이탈 가능성"
올 주식 매도 10조 넘어…IT·금융株 차익 실현
외국인이 이달 들어 국내 채권과 주식시장에서 5조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계 자금이 주도해 채권시장에서 4조3000억원, 주식시장에선 7040억원이 빠져나갔다. 특히 채권시장 순투자 감소 규모는 올 들어 최대다. 이달 들어 만기된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은 채 현금으로 상환받았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에선 외국인이 재투자에 나설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채권 판 돈 4조원 향방은시장 참여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 보유 채권을 만기 전에 처분하며 한국 시장을 떠날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재투자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지난 10일 3조원의 채권을 만기 상환한 프랭클린템플턴이 현재 재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신 본부장은 “이번 상환금액은 템플턴 전체 운용 자산의 1%를 웃돈다”며 “이 정도 규모를 오래 현금으로 가지고 있거나 한꺼번에 환전해 나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도 “원·달러 환율이 최근 상승세를 나타내고 절대금리 매력도 줄어들긴 했지만 원화는 여전히 기대절상률이 가장 높은 통화 중 하나”라며 “펀드 환매 부담만 없다면 이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매년 말 외국계 은행들의 ‘북 클로징’(장부 마감) 영향으로 인한 계절성도 일부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의 채권 순투자금액은 지난해 12월에도 -5조3017억원, 2009년 12월엔 -1조579억원을 나타냈다.이재형 동양증권 연구원은 그러나 유럽발 금융시장 경색으로 외국인이 국내 채권 보유 규모를 더 늘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물환을 매도하고 국내 채권을 매수하는 영업을 확대해온 외은 지점들이 관련 포지션을 늘리기 힘든 환경이 됐다”며 “외국인 채권 투자 잔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년 초 무디스의 프랑스 신용등급 조정 가능성과 한국의 CDS프리미엄(신용위험) 상승이 재투자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은 올해 10조원 이상 순매도외국인은 이달 들어 주식을 7040억원어치 팔아 올해만 순매도 규모가 10조3900억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연간 순매도 규모가 10조원을 넘은 건 2008년(45조원)과 2007년(30조원), 2006년(11조원) 등 3개년뿐이다.

외국인은 지난 7월까지는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지 않았으나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가 고조된 8월 이후 10조13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 기간 유럽계 자금은 7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유럽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국내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내던진 때문이다. 지난달부터는 미국계 자금의 ‘팔자’가 거세지고 있다. 이달 15일까지 6100억원을 순매도한 것을 포함해 한 달 보름간 9000억원가량을 팔아치웠다. 안승원 UBS증권 전무는 “위험 자산인 주식 자체에 대한 부담으로 외국인이 아시아 증시에서 전반적으로 주식을 팔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외국인 매매 종목을 보면 정보기술(IT) 금융주에 대해 차익을 실현하는 대신 자동차 화학주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가장 많은 7265억원어치 순매도했으며 SK텔레콤(1779억원) KB금융(1134억원) LG전자(1080억원) 하나금융(1020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현대차를 2454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을 포함해 SK이노베이션(1301억원) LG화학(1161억원) 현대중공업(658억원) 등을 사들였다.

서정환/이태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