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선율] "일어나요 내사랑…" 비너스의 간절한 키스, 열정은 다시 타오르고…

J. W. 워터하우스의 '잠에서 깨어난 아도니스'

'전쟁 신' 아레스 질투로 사지에 갔던 미소년, 제우스 선처로 부활
장미꽃·큐피드의 화살…핑크빛 사랑 무드 충만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가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상대는 누굴까.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나눈 파트너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였지만 가장 집착했던 존재는 아도니스였다. 특유의 바람기를 억누르지 못해 남편인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놔두고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밀회를 즐겼던 비너스는 올림포스의 신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 조롱거리가 됐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아도니스가 비너스의 새로운 연인으로 등장하자 아레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도니스는 키프로스 왕 키니라스와 그의 딸 미르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왕은 뒤늦게 자기 애인이 친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치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 왕은 딸을 죽이려 했는데 미르라가 그 사실을 미리 알아채고 도주해서 낳은 아들이 아도니스였다. 이때 아이의 아름다운 얼굴에 반한 비너스가 아이를 상자에 담아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의 부인인 페르세포네에게 맡겼으나 그녀 역시 아이에게 반해 되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제우스신이 중재에 나서 아도니스는 1년의 3분의 1은 아도니스와, 3분의 1은 페르세포네와 보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도니스가 원하는 상대와 지내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아도니스는 당연히 미의 여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이렇게 해서 비너스는 1년 중 3분의 2를 아도니스와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런 와중에 한 장난꾸러기 큐피드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녀석이 잘못 쏜 사랑의 화살이 그만 비너스의 몸에 명중한 것이다. 안 그래도 미소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는데 사랑의 화살까지 맞았으니 이제 비너스의 안중에서 아레스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랐다. 졸지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버림받은 아레스는 질투심에 부르르 치를 떨었다.

미의 여신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도니스가 장차 사냥 중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사실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신으로서의 체통이고 뭐고 다 버리고 만일의 사태로부터 아도니스를 보호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냥터를 쫓아다녔다. 사냥에 지친 아도니스가 수풀 위에 누워 단잠을 청할 때면 비너스는 그윽한 눈초리로 아도니스를 응시했다. 아도니스가 깨어나면 다시금 입을 맞추며 사랑을 속삭였다. 짧지만 꿈 같은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비너스는 사랑하는 소년에게 수세에 몰린 동물을 잡는 것은 위험하니 도망치는 동물을 뒤쫓아 가서 잡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소년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도니스는 성난 멧돼지에게 물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만 것이다. 절치부심하던 아레스가 멧돼지를 시켜 꾸민 일이었다.

비너스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처절하게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아도니스가 피를 흘린 자리에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아네모네, 곧 바람꽃이 피어올랐다. 미풍만 불어도 꽃 판이 흩날려 그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이 가녀린 꽃은 아주 짧은 동안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다 스러진 아도니스의 불꽃 같은 삶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슬픔에 잠긴 비너스는 제우스신에게 아도니스를 소생시켜 달라고 간청했고 제우스는 아도니스가 1년 중 반년은 지상으로 나와 비너스와 지내는 것을 허락해줬고 나머지 반년은 지하세계에서 지내도록 한다. 평범하지 않은 탄생, 여신들이 탐낼 만한 미색, 아레스 신의 질투, 여인과 소년의 사랑 등 온갖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한 아도니스 이야기가 두고두고 문학과 예술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들은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 화가들의 단골 소재가 됐다. 관학파 미술의 가식적이고 타성에 젖은 화풍에 반기를 든 라파엘전파의 화가들은 라파엘로 이전의 회화처럼 자연에서 배움으로써 회화의 순수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라파엘전파를 추종했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신화와 전설, 문학 속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두루 그렸던 화가로 기억된다. 물론 그는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사랑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도니스’는 그의 화필이 한창 무르익은 1900년께 그려진 것인데 라파엘전파의 화풍을 따라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중앙에 가로로 누은 아도니스가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고 비너스가 그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내며 입 맞추려 하고 있다. 아도니스의 오른쪽에는 세 명의 어린 큐피드가, 왼쪽에는 한 큐피드가 장미꽃을 꺾고 있다. 아도니스의 주변에 아네모네가 피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그림은 멧돼지에 물려죽은 후 제우스의 선처로 다시 깨어나는 장면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화가는 비너스의 사랑을 뜻하는 비둘기와 장미를 비너스 곁에 그려 넣어 바야흐로 달콤한 사랑의 기쁨이 두 연인 사이에 넘쳐흐르리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본받아 회화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했던 라파엘전파가 감각적인 그림만 양산했듯이 워터하우스의 그림도 내용만 신화적인 것이었지 감각적인 묘사와 현란한 색채로 감상자를 매혹할 뿐이다. 그곳에 사랑의 슬픔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오직 사랑의 기쁨만이 넘쳐흐를 뿐.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왈츠 '사랑의 기쁨'

클래식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곡으로 프리츠 크라이슬러(1875-1962)의 ‘사랑의 기쁨’은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겨우 3분10초에 불과한 소품이지만 이 곡만큼 대중들에게 친숙한 멜로디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라이슬러는 비엔나 음악학교와 파리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다. 로마대상 수상자의 자격으로 이탈리아에 유학 후 미국에 건너가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했는데 그 현란한 기교와 개성적인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작곡가로도 만만치 않은 족적을 남겼는데 특히 주옥같이 아름다운 소품은 각종 축하행사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고 있다.

‘사랑의 기쁨’은 ‘사랑의 슬픔’ ‘사랑스런 로즈마리’와 함께 ‘비엔나의 옛 멜로디’라는 제목 아래 작곡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곡짜리 소품의 일부였다. 원래 이 곡은 1910년 크라이슬러가 콘서트에서 앙코르용으로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왈츠였지만 나중에는 그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의 기쁨을 알고 싶은 사람들, 옛 사랑의 기쁨을 회상하고픈 사람들에게 이 곡을 권한다.

▶QR코드를 찍으면 명화와 명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