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밀레니엄 포럼 송년모임] "글로벌 침체·中 경착륙 우려·北리스크까지…내년 경제 어렵다"

'票퓰리즘' 정책 자제…서비스업 살려 일자리 늘려야
北 명령경제 체제 이미 무너져 충격 크진 않을 것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는 북한의 명령경제 체제가 함께 무너져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그런 체제가 이미 무너진 상태여서 충격이 작을 것이다.”(송병준 산업연구원장)

“김정은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체제가 붕괴되거나 리셋(재시작)될 경우 그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포럼 송년모임에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화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다. 유럽 재정위기와 세계 경제 둔화, 중국의 경착륙 우려 등으로 대외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경기의 하강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높았다.

◆“북한 충격 장·단기 효과 다를 것”

참석자들은 김 위원장 사망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우리 경제 규모가 1994년보다 커졌다는 점에선 충격의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며 “다만 당시에는 김정일 후계 체계가 갖춰진 데 비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김 위원장 사망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졌다”며 “북한이 빨리 안정을 찾으면 리스크가 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 경제에 굉장한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차분한 대응을 주문하는 의견도 나왔다. 북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도자를 잃은) 북한보다 우리가 더 쇼크를 받은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 조만간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예견된 사항인 만큼 흥분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경제 더 어렵다”현 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자신감이 너무 떨어진 게 문제”라며 “우리 경제도 당분간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내년에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58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말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며 “최근 위기의 본질이 재정위기인 탓에 각국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이 현저히 약해져 있고 민간 부문의 자생적인 회복력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제의 내부 성장 메커니즘이 자리잡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러나 한·일 FTA나 한·중·일 3국 FTA에 대해선 “실익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조선·반도체 부진, 기계·자동차 약진

산업별로는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릴 전망이다. 송병준 원장은 “내년 10대 주력 산업의 수출 증가율은 올해보다 크게 낮은 6.5%에 그칠 전망”이라며 “일반기계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은 10% 이상의 호실적으로 수출을 주도하겠지만 조선과 반도체는 부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태 전 국제무역연구원장은 “우리 경제는 공산품 수출은 7위인데 서비스 수출은 15위”라며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선거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직선제 도입 이후 치러진 다섯 차례의 대선 중 주가가 전년 대비 상승한 해는 두 번, 하락한 해는 세 번이었다”며 “선거 자체보다 기업에 대량으로 쌓여 있는 보유 현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제시하고 실천하느냐가 주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선심성 정책 자제해야

경제연구소장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기 목표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서민생활 안정에도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주현 원장은 “선거의 해를 맞아 눈앞의 표에 정신 팔린 정치인들이 쏟아놓을 설익은 복지정책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더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노성태 대한생명경제연구원장은 “내년 예상 성장률로는 고용 확대나 분배 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데다 정치 일정으로 경제활동을 더 위축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며 “이것이 다시 성장을 억제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용석/김일규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