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점심때만 지나면 무기력…'肝수치' 정상이라도 만성피로 찾아온다

간 손상…피로물질 분해 못해 '전격성 간염' 으로 진행되기도
약물치료·식습관 개선 동시에…하루 10~15분 걷기 가장 효과
직장인 강모씨(41·수원 팔달구)는 올 들어 아침에는 괜찮다가 점심시간만 지나면 심한 피로와 함께 집중력이 떨어져 고민이다. 몸이 아픈 것 같지는 않는데 피로가 극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일을 거의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8년째 서울 논현동의 사무실까지 1시간 이상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통근해도 별로 힘든 줄 모르는 체력이었기에 더욱 조바심이 난다. 강씨는 결국 최근 병원을 찾아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 “과로가 누적되면서 간 기능이 약해져 생긴 만성피로”라는 진단을 받았다.

○휴식 취해도 회복 안되는 상태 반복‘만성피로’는 기운이 없고 활력이 떨어지며 휴식을 취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통상 1개월 미만의 일과성 피로(급성피로)와 구분된다. 일과성 피로는 기간이 짧고 잠을 푹 자거나 주말에 쉬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중한 업무와 상사와의 갈등 등에 시달리는 직장인은 수면부족에 의한 일과성 피로와 만성피로를 자주 혼동한다. 만성피로는 오전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해도 점심시간 전후로 ‘무기력감’에 시달릴 때가 많다. 따라서 졸음보다 축 처져 있는 상태가 오래간다. 단적인 예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던 중 피로를 느껴 잠을 청할 수 있다면 수면부족,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다면 만성피로일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과로가 원인인 일과성 피로와 달리 만성피로는 몸이나 마음 어딘가에 원인질환이 있다. 결론적으로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근본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 물론 만성피로와 증상은 같지만 다른 원인질환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한다. 이 경우는 명확한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고 의사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항우울제나 소염진통제 등을 처방한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의료계 추산으로 지난해 1년간 국내에서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대략 8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로 만성피로가 있는 사람은 이보다 1.5배쯤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간 기능 이상이 가장 큰 원인만성피로의 원인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간 손상이다. 만성피로의 20% 정도가 간 기능이 약해져서 생긴다. 간은 정맥(간문맥)을 통해 들어온 혈액 속 노폐물(피로물질인 젖산 등)을 걸러내 분해시킨다. 간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피로물질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성피로가 나타난다. 만성간염 환자가 약간만 활동해도 금방 피로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간 수치(AST/ALT 40 이하가 정상)만으로 만성피로를 확인할 수는 없다. 만성피로와 함께 간 수치가 정상 범위를 약간 웃도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가 전격성 간염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평소 간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야 만성피로를 줄이고 간 손상을 예방할 수 있다. 웅담 성분으로 담즙 분비를 촉진하는 우루소데옥시콜리산(UDCA)을 꾸준히 섭취하면 간 보호에 도움이 된다.

간 기능 이상 다음으로 흔한 원인 질환은 갑상선기능 항진증 및 저하증이다. 갑상선기능 항진증은 체내 에너지를 너무 빨리 소진시켜 만성피로를 부르고, 저하증은 몸에서 생성되는 에너지 자체가 모자라서 만성피로의 원인이 된다. 여성에게 많으며 길면 수년간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성피로 치유하려면만성피로증후군은 일반적으로 몸의 불균형 상태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시간에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전문의와 상의해 평소 스트레스 관리, 영양 및 호르몬의 균형 유지, 잘못된 생활습관 개선 등을 한다. 약물치료할 때는 생활습관 조절이나 보조치료 등 다른 치료를 동시에 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약물은 항우울제, 항불안제, 신경병증성통증치료제, 뇌혈순환개선제, 영양보조제, 면역기능강화제 등이다. 다른 원인 질환이 없으면 호르몬·미네랄 보충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충분한 수면과 영양섭취를 한다.

임형준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미 등 다당류로 된 정제되지 않은 음식,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채소, 저지방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며 “포화지방과 커피·홍차·콜라·인삼·마테차·알코올 등 자극적인 식품, 단맛이 나는 감미료, 동물성 지방, 인공 식품첨가제 등은 피하도록 한다”고 조언했다. 만성피로에 좋은 운동은 걷기다. 하루 10~15분 주 3회에서 시작해, 2~3개월 후에는 하루 40~50분 주 5회씩 한다. 수영은 호흡계와 순환계 기능을 향상시켜 만성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의자나 수건을 활용해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하는 것도 좋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임형준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이윤경 차움 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