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헤지펀드와 규제의 역설

손발 묶인 한국형 헤지펀드…파생시장 규제도 재고해야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9개 자산운용사가 등록 신청을 한 12개 헤지펀드가 23일 공식 출범한다. 국내에도 드디어 헤지펀드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헤지펀드 도입은 의미가 적지 않다. 소위 양방향 투자의 길이 본격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사실 천수답과도 같은 투자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수익낼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직접투자나 펀드투자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헤지펀드에 투자하면 다양한 투자가 가능하고 주가가 떨어져도, 혹은 주가가 제자리만 있어도 수익을 내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투자수단과 방식을 제공하는 헤지펀드가 국내에서 이제서야 시작되는 건 부정적인 시각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위험한 투기를 일삼아 시장을 교란하고 원금을 넘어서는 손실도 빈번하다는 헤지펀드에 대한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1992년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했던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나 금융위기 때마다 헤지펀드 이름이 오르내린 탓도 있을 것이다.이런 인식이 여전해서인지 금융당국은 헤지펀드는 허용했지만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를 씌워 놓았다. 자산운용사의 자격과 최소 가입금액(5억원), 레버리지 비율 제한(400%)을 둔 것은 물론 분기별 월별로 펀드의 투자대상과 투자전략, 현황 등을 당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외국에서도 금융위기를 계기로 헤지펀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이제서야 도입을 검토 중인 규제를 우리는 처음부터 채워놓고 시작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자칫 헤지펀드가 뿌리내리기도 전에 고사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헤지펀드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투자방법이 ‘롱쇼트 전략’임은 잘 알려진 대로다. 고평가된 주식은 팔고 저평가된 주식은 사는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번주 출범할 거의 모든 펀드가 이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롱쇼트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공매도가 필수라는 점이다. 그런데 국내시장에서는 수시로 공매도가 제한된다. 지난달 3개월 만에 규제가 풀렸지만 금융주 공매도 금지는 2008년 10월 이후 만 3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물론 유럽발 위기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만큼 시스템 리스크는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소위 ‘규제의 역설’이 가장 나타나기 쉬운 분야가 바로 헤지펀드라는 점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과도한 규제는 펀드 수익기반을 잠식하고 이는 투자자들의 수익률 저하와 직결된다. 투자 위험을 줄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리스크를 높이는 규제의 역설이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내년 시행 예정인 파생상품 규제 강화도 그런 점에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주가지수 선물·옵션시장의 과열을 막는다며 선물 현금 예탁비율을 상향 조정한 것이나 옵션 거래단위를 5배 높인 조치는 개인투자자 보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장 유동성만 고갈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유동성 부족은 펀드 운용에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손발을 다 묶어 놓을 거면 도대체 왜 헤지펀드를 허용하는지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온다. 당국이 그저 생색만 내고 말 생각이 아니라면 좀 더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