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전자책에 무관심한 까닭은

해외문화 프리즘
지난 4월 세계 유수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은 자사의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을 처음으로 앞질렀다고 발표했다. 2000년을 이어온 종이책의 전통이 붕괴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미국 출판계가 이처럼 전자책으로 급속히 그 무게중심을 이동해가고 있지만 유럽 출판계는 아직 이런 변화를 자신들의 문제로 체감하고 있지 않은 눈치다. 영국이 약 10%로 마켓 셰어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을 뿐 나머지 국가들의 전자책시장은 1% 내외에 불과한 실정이다.프랑스는 최근에야 전자책 판매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유럽의 정보기술(IT) 선진국인 스웨덴과 노르웨이도 생각보다 반응이 저조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반면 전자책 판매로 자신감을 얻은 아마존은 전자책과 종이책 출판에도 손을 뻗쳤다.

제프 베저스 사장은 거물 래리 커슈봄 전 타임워너출판사장을 스카우트해 문학 및 SF·스릴러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고 벌써 100여종의 신간을 내놨다. ‘르몽드’지가 최신호 사설에서 “5년 또는 10년 내 아마존이 지구촌 최대 출판사로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전망한 것은 결코 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석한 유럽 출판인들의 관심은 온통 종이책의 미래와 오프라인 서점의 종말 문제에 쏠렸다.

그러나 그들은 출판시장의 대혁명에 비교적 담담히 대처하는 모습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우려를 감출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종이책의 미래를 낙관하는 듯하다.

유럽의 분위기가 미국과 다른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관련이 있다. 어려서부터 사색의 즐거움, 느린 삶의 가치를 체득하며 성장한 유럽인들로서는 기계로 책을 본다는 발상 자체가 불편하다. 기계화, 코드화된 전자책 시스템 속에서 아날로그에 기반을 둔 인문적 창의성이 싹트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디지털 문화에 대한 저항감은 유럽인들 사이에생각보다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둘둘 말아 호주머니에 꽂아 넣을 수 있는 말랑말랑한 책이다. 유럽에서 전자책이 대중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