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헛발' 짚은 재미 친북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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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친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 교민사회에서 극소수에 불과한데, 따로 분향소를 차리겠다니 ‘생뚱맞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재미교포 A씨)
친북단체인 재미동포전국연합(동포연합)이 유엔주재 북한대표부가 설치한 공식 분향소와 별도로 뉴욕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문소를 마련하기로 했다가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당초 북한대표부가 외교사절단의 조문만 받겠다고 하자 교민들이 조문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대표부가 교민들의 조문도 받기로 방침을 바꾸자 계획을 거둬들였다. 동포연합은 북한대표부가 없는 로스앤젤레스(LA) 등 미 서부에 조문소를 차리는 방안은 여전히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북한대표부가 지난 20일부터 설치한 분향소에는 북한 수교국들의 유엔 주재 외교관들만 일부 다녀갔을 뿐 일반 교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일 동포연합 회원 15명, 21일 문동환 목사를 비롯한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회원 5명 등이 민간 조문객의 전부였다. 취재나온 기자들이 아니면 분향소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한산한 모습이었다.
뉴욕 총영사관에 따르면 동포연합의 회원 수는 50명 미만이다. 그나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20~30명에 불과하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내용의 실현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활동하는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는 회원 수가 더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 친북단체의 세력이 원래부터 약했던 건 아니다.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보다 강했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한 세력을 유지했다. 남북 정부 간 대화가 단절돼 있던 시절이어서 ‘통일운동’은 나름대로 명분도 있었다.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과의 연대로 일부 교민들의 지지도 받았다.하지만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남북간 공식 대화채널도 구축되면서 미국 내 통일운동은 명분과 세력을 잃어갔다. 독재 정권의 실정으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깊어지면서 대부분의 교민들은 친북세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독재자의 죽음에 왜 조의를 표하냐”는 게 교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다. 그런데도 뉴욕에 독재자를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친북단체들의 인식은 그들의 존재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창재 뉴욕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