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체제] 강경론 고수하다 고립될라…北 변화 대비 선택 폭 넓히기

북한 어디로… (4) 대북정책 기조 '원칙'서 '대화'로

조의 표명·민간 조문 허용…대북기류 변화 신호탄
MB, 신년연설 주목…이산가족 상봉·적십자 회담 내년초 재개 가능성
‘원칙’에서 ‘대화’로 대북정책 기조가 바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의 유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보다 전략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반도 주변 4강이 모두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상황에서 강경론을 고수하다 자칫 우리만 고립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 같다.

김 위원장 사망 이튿날인 20일 발표된 북한에 대한 간접적인 정부의 조의 표명이 변화의 첫 신호탄이다. 김일성 사망 당시 우리 정부가 조문은 물론 조의도 표하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조문과 민간 차원의 대북 조전 발송을 허용한 조치도 같은 맥락에서다.이번 결정은 정부 내 대북 강경파와 유화파 간의 대결에서 유화파가 일단 판정승을 거뒀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여야 교섭단체 대표ㆍ원내 대표와 가진 회담에서 “북한 사회가 안정되면 이후 남북관계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할 여지가 있다”고 말해 이전에 비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정부 내 기류변화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바뀌는 중요한 시점에서 대북 레버리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도 정책을 바꿀 기회를 맞은 만큼 우리 정책 선택의 폭을 미리 예단해 제약하지 않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며 “큰 목표를 위해 동원할 수단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주변국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9명의 중국 수뇌부는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파격적인 조문을 했다. 미국도 뉴욕채널을 통해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첫 북ㆍ미 접촉을 가진 데 이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후계자 김정은의 이름을 직접 언급해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북한 변수의 돌출로 동북아 정세가 격랑에 빠져든 상황에서 자칫 우리 정부가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대목이다.

정부 내부의 수요도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줄곧 대치국면을 이어왔다. 역대 최악의 도발인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군사적 긴장까지 이어졌다. 이제 이 대통령의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남북관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남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 역시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금강산·개성관광 등 중요한 달러박스를 되살리는 것도 북으로서는 시급한 과제다. 남북이 모처럼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계기지만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관건은 역시 천안함·연평도 사건이다. 두 사건의 최고책임자인 김 위원장이 사망했지만 그것만으로 정부가 그간 일관되게 요구해온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접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정책일관성을 흔드는 동시에 현 정부 지지세력인 보수층의 정서와도 거리가 있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을 두고 대치해온 남북 모두 지금까지의 정책경로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북한 최고지도자 교체라는 상황을 계기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를 풀어갈 기회가 언제 또 생길지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초 발표될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이 주목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부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임기 마지막 해의 대북정책 방향의 큰 틀이 제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서는 선제적인 대북 제의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다면 특별한 표현 없이도 후계자 김정은이 이끄는 새 체제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내년 1월이 적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2월16일은 김 위원장 사후 처음 맞는 생일인 만큼 기념행사를 위해 북한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4월15일은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이다. 우리 정부 역시 3월 핵안보정상회의를 시작으로 4월 총선, 12월 대선 등 국내 정치적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할 입지가 좁아지는 시기다.

이에 따라 남북이 내년 초 이 대통령의 신년연설과 북측의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대화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예상보다 빨리 대화가 추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된다면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의제로 한 남북 적십자회담, 그리고 지난 1월 천안함 침몰사건 해결방안을 논의하다 결렬된 남북 군사회담 재개로 첫 단추를 끼울 가능성이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