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타임즈의 확대경] 사라지는 '사브'…성능만으로 시선 끌던 시대 지났다

스웨덴 자동차회사 ‘사브’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브 얘기만 나오면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자랑한다. 나아가 사브에 적용된 갖가지 기술뿐 아니라 철학과 전통까지, 그야말로 사브 전문가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애착이 대단하다. 심지어 사브를 마약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사브에 맛을 들이면 제 아무리 좋은 차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던 사브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13년 전 사브 900을 갖고 싶어 월급을 꼬박꼬박 모으던 K씨. ‘사브’ 이야기만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정열을 발휘했다. 사브의 역사부터 모델의 변천사, 그리고 경영진의 성공과 실패, 사브만의 철학과 기술까지 일목요연하게 꿰고 있어 마치 사브 엔지니어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한 명의 사브 마니아 B씨. 유명 성우로 지금도 활약 중인 그는 방송가에서 자동차 전문가로 꽤나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다. 사브 마니아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여서 부인에게 사준 사브 900을 틈날 때마다 빼앗아(?) 타던 인물이다. ‘야성이 감추어진 준마’는 B씨가 사브를 표현할 때 즐겨 쓰던 말이다.

국내 모 자동차회사에서 자동차 종합평가를 수행했던 S씨. 회사 멀리 주차장에 남몰래 세워 둔 사브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에게 사브는 언제나 ‘고성능 세단’으로 기억됐다.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주행할 때 짧은 순간 발휘하는 엄청난 힘, 사브가 꼭 그렇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이들 3명의 사브 애착론은 한마디로 ‘직접 타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타보고 싶어도 차가 없고, 사려는 사람조차 없다. 단순한 성능만으로 소비자 시선을 끌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1891년 궤도차로 출발해 1911년 상용차를 만들고, 1918년 6기통 110마력 항공기 엔진을 만든 뒤 1937년 아예 항공기 제작사가 됐던 사브. 전쟁 후 항공기 사업의 대안으로 시작했던 승용차 사업, 항공기를 만들던 엔지니어 15명이 6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 내놓은 첫 차종 92. 이때까지 사브의 승용차 제작은 성공이었다. 비록 764㏄ 25마력 독일제 엔진을 사용했지만 엔진튜닝을 통해 소형차로 시속 105㎞를 낼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고, 항공기에 사용하다 남은 녹색 페인트만 사용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 현재 279㏄ 300마력의 사브 95는 마지막 차종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멀어져 가는 사브에서 배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기역학이다. 항공기를 만들면서 쌓인 공기역학만큼은 오랫동안 철학처럼 지켜왔고, 문 닫기 직전인 지금도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비록 철학에 지나치게 집착해 변화에 둔감했지만 최근 연료효율을 높이려는 노력 가운데 중요한 요소가 공기역학임을 고려하면 사브야말로 여러 자동차회사에 좋은 교훈을 남긴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92를 만들었던 항공기 엔지니어들이 살아있다면 “공기역학을 지켜줘 고마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철학을 너무 지켰어”라고 질책도 하지 않을까 한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