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만 훈훈한 스토리가 결국 감동 주더군요"

1월 5일 개봉 '원더풀 라디오' 주연 이민정
이민정(29)의 어조는 낮고 말투는 느리다. 하이톤으로 얘기하는 또래의 정상급 여배우들과는 다른 분위기다. 성균관대 연기예술과를 졸업한 뒤 연예계에 진출한 ‘늦깎이 스타’여서일까. 2009년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조연으로 시선을 모은 그는 지난해 첫 주연한 상업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성공과 함께 순식간에 10편의 광고에 출연하며 ‘광고 퀸’에 올랐다.

내년 1월5일 개봉하는 권칠인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서는 기존의 청순녀 이미지와 거리가 먼, 발랄하고 솔직한 라디오DJ 신진아 역을 맡았다. 그는 막가파식 진행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가 힘겹게 재기하는 과정을 예쁘게 연기했다.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시나리오를 읽어 보니 신진아의 성장담이 소소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졌더군요. 라디오를 듣고 자란 세대라 DJ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요. 극중에 고(故) 김현식, 김광식 선배 노래도 나와요. 걸그룹 출신 DJ란 배역이 제 나이에 딱 맞는 역할이다 싶어 출연했어요.”

극중 신진아는 방송에서 막말을 하고 멋대로 신청곡을 바꿔 튼다. 청취율이 곤두박질하고 새 PD와는 반목한다. 그러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노래로 전하는 코너를 시작하면서 전기를 맞는다.

“따스한 사연들이 감동을 줘요. 그냥 둬도 훈훈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예요. 그 뻔한 스토리가 매력적이죠. 클래식은 언제나 통하잖아요. 클래식을 통해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촬영 중에는 대본에 없던 애드리브가 유난히 많았다고 했다. ‘얼빵한’ 매니저가 차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탓에 한강 다리에서 고장이 나 방송에 지각하게 된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리 위에서 ‘살려주세요’라고 외치게 되더군요. 화가 나 광수(매니저)의 어깨와 목도 때렸죠. 나중에 모니터를 보니 ‘미리미리 차 점검하랬잖아’ 하고 윽박지르는 장단에 맞춰서 때리는 제 자신이 무섭더라고요.”

그의 이런 대화는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권 감독의 말처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미팅을 하고, 떡볶이도 먹는 평범한 시절을 다른 여배우들보다 오래 보냈기 때문일까.“배우로 산 것은 2006년 데뷔 후부터 제 인생의 6분의 1이지만 남들이 저를 알아본 것은 3년 전부터니까 사실상 제 인생의 10분의 1 정도예요. 20년된 제 친구들은 저를 배우로 안 봐요. 엊그제 백화점에 갔을 때 사람들이 수군대자 친구들은 ‘누가 왔나봐’라며 뒤돌아보더라고요. ‘나야 나’라고 말하니까 그제서야 깨닫더군요.”

그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재학 시절. 2001년 신설 학과에 입학할 당시에는 연출에 관심이 있었다. 두 편의 단편영화도 감독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니까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남들 앞에서 평소 말을 잘 못하는데 연극을 하니까 의연하게 얘기할 수 있더라고요. ‘안 떨고 할 수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수님도 ‘배우해도 되겠네’라고 했어요.”그러다 3학년 때 장진 감독이 대본을 쓴 ‘서툰 사람들’에서 주역으로 나선 뒤 댓글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괴롭고 힘들었는데 연극을 보니 세상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댓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삶에 감동과 힘을 줄 수 있다면 해보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언제나 작품 속에 스며드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작품을 본 관객들이 자신보다는 작품 자체에 빠져드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