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자중지란 빠진 對中외교

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
최근 한국의 대중(對中) 정보력과 외교력이 뭇매를 맞고 있다. 한국국가정보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북한의 공식 발표 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사망발표 직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외교라인은 이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국회에서는 대중 외교력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자 문책론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외교력 부재’(?)는 한국에만 있었던 현상은 아니다. 러시아의 해외정보업무를 책임지는 미하일 프라드코프 대외정보국(SVR) 국장은 “북한 정보기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김정일 사망을 방송보도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는 일본 미국은 물론 중국마저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후 주석과의 통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의 사망 후 다른 나라의 지도자 누구와도 통화를 하지 않았다. 25일 방중한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 역시 후 주석과의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불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북한과 이해당사자인 한국의 상황을 주변국과 동등하게 놓고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한국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주변국에 비해 더 많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동안 그런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 현 정부가 총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의 사망은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이고 △중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사실을 미리 알고도 우리에게는 알려주지 않았고 △후 주석도 유독 한국과 대화를 피하고 있다는 식의 근거없는 인식도 문제다. 한 외교 관계자는 “마치 중국과 한국의 관계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한국의 외교관들은 중국에 더욱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중국은 우리를 더욱 얕보게 된다”며 “이런 상황은 우리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김 위원장 유고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중 외교력의 미흡함을 지적할 수 있지만 외교의 발목까지 잡아서는 곤란하다. 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한국의 모습을 중국이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민망하기도 하다.

김태완 베이징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