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 무기력…광고시장 재앙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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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이어 MBC도 독자 미디어렙 선언 '파문'서울방송(SBS)에 이어 문화방송(MBC)이 독자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을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미디어환경 변화와 광고시장 재편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영 미디어렙 1개, 민영 미디어렙 1개 설립을 시도했던 정부와 여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자사 이기주의에 함몰된 언론사들은 극단적인 광고수주 경쟁에 내몰리게 됐고 그 부담은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무기력한 행태에 관련 법안 통과를 미적거린 정치권의 좌고우면이 맞물리면서 광고시장의 대재앙이 목전에 임박한 것이다.
공영·민영 한개씩 설립 수포로 돌아갈 위기
여기저기서 손 벌리면 기업들만 죽어날 판
MBC는 26일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상반기 중 독자 미디어렙을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여당과 야당이 종편(종합편성) 채널 방송들은 미디어렙 체제에 묶지 않으면서 MBC만 공영 미디어렙에 묶으려고 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방울을 달지 않았다”
미디어렙 문제는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독점적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비롯됐다. 방송광고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막고 광고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게 헌재 판결의 취지였지만 광고시장이 급속히 재편될 경우 군소 방송사들이 벼랑 끝으로 몰린다는 게 문제였다.
이에 국회의원들은 20여개 법안을 내놓았고 방송산업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 미디어렙 1개, 민영 미디어렙 1개가 바람직하다는 정책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도 선뜻 중재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냐”며 관련 방송사들이 합의해서 가져오라는 식으로 일관했다.이런 상황에서 미디어렙 법안은 18대 국회 마지막인 금주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폐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맹수가 우리를 뛰쳐나갔다”
미디어렙 협상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미디어렙 최대주주 지분을 얼마로 하느냐, MBC를 민영, 관영 중 어느 쪽에 포함시키느냐, 신규 종편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등이었다. 신규 종편은 일찌감치 제각기 영업을 시작했다. MBC와 SBS는 “방통위가 일방적으로 종편만 편든다”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SBS는 최대주주 지분이 40% 이상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MBC는 공영 미디어렙에 포함시키려는 게 불만이었다. 결국 두 방송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역방송사들과 종교방송사들은 졸지에 생사를 걱정하는 지경에 내몰렸다. 현재는 코바코에서 광고를 일괄적으로 수주해 나눠주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독자적인 영업에 나설 경우엔 KBS MBC SBS 등 거대 방송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방송의 공익성과 다양성이 심각하게 손상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송광고 영업도 경쟁에 맡겨야 한다는 게 헌재 판결의 취지다. 불합리한 판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코바코 체제의 생태계가 갑자기 아무런 규제도 없는 무한경쟁으로 바뀔 때 생기는 파장이다. 광고업계는 이날 MBC의 이탈에 대해 “맹수 한 마리가 우리를 뚫고 뛰쳐나갔다”는 표현을 내놓고 있다.향후 방송광고시장이 급변해 무한경쟁으로 치닫게 되면 기업과 광 고주들은 극심한 광고 요구에 시달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광고시장이 대형 방송사와 언론사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그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조정능력 부재와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만 종용한 채 팔짱을 끼고 있었던 국회의 무능력이 광고시장을 약육강식의 막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 미디어렙
Media Representative의 줄임말. 방송사의 위탁을 받아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하는 회사다. 국내에선 공영 미디어렙인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있지만 2008년 1월 헌법재판소가 이 회사의 광고 판매대행 독점에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