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빈 집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언제 읽어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기형도 시인(1960~1989)의 ‘엄마 생각’이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사방이 캄캄해질 때까지 혼자 식구들을 기다리며 외로움에 떨던 게 어디 시인뿐이었으랴. 어린 시절 밖에서 돌아오면 대문을 들어서기 무섭게 소리쳤다. “엄마!” 답이 없으면 톤을 높였다. “엄마~” 그래도 조용하면 더 크게 외쳤다. “엄마, 어디 계세요~.” 빈 집에 자기 목소리만 울려 퍼질 때의 적막감이란. 순간 풀이 팍 죽지만 스스로를 달랬다. “금방 오시겠지.”

기다림은 초조함, 초조함은 서러움, 서러움은 눈물로 바뀌곤 했다. 빈 집에 들어서기 싫은 건 어른이 돼도 마찬가지. 단독주택이건 아파트건 어두운 빈 집에 들어서서 불을 켜는 순간의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누군가 몰래 숨어 있진 않을까, 도둑이 들었던 건 아닐까 등. 온종일 집을 비워야 하는 맞벌이주부는 더 그렇다.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가장 큰 요인도 안전성이다. 집을 아무 때나 비울 수 있는 건 물론 웬만큼 크면 아이만 따로 놔둬도 괜찮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대구 중학생의 경우, 다른 곳도 아닌 자기 아파트에서 온몸이 피멍이 들도록 맞고 시달렸다는 마당이다.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고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이렇거늘 초·중생 자녀를 둔 맞벌이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밤잠을 못 자는 등 공황장애를 겪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겐 연령이 따로 없다. 폭력의 수위도 상상을 불허한다. 중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잔혹하기가 조폭 뺨친다는 판이다. 촉법소년(10~14세 미만)이란 이유로 처벌하지 않기엔 피해자와 가족의 상처가 너무 깊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지만 처벌 없인 예방도 근절도 있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맞벌이부부는 집안에도 CCTV를 설치, 바깥 어디서든 수시로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필 수 있게끔 만들어놔야 하게 생겼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든 즉각 들이닥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끔찍한 세상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