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심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훈련시키는 중이죠"

Culture Power - '역사소설 솔섬' 펴낸 안정효 씨

퇴행적 정치·역사 풍자 "상상력에 자유 주고 싶어 '막소설'이라 이름 붙였죠"
“우리는 중병을 앓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 현실을 비관적으로 얘기하지만 저는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거쳐야 할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거죠. 올해가 선거의 해인데 시민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선거를 잘 치렀으면 좋겠습니다.”

《하얀전쟁》《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작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씨(71).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꾸준히 창작과 번역에 몰두하며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3권짜리 정치 풍자소설 《역사소설 솔섬》(나남)을 펴낸 안씨가 ‘정치의 해’ ‘선거의 해’인 임진년 새해를 맞는 소감은 남다르다.“정치인이 시민보다 오히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시민들이 정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다른 쪽에 권력을 줬다가 다시 빼앗았다가 하는 걸 반복하고 있죠. 시민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훈련’시키는 중인데 시민들도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정치인들은 더욱 모르고 있어요.”

《역사소설 솔섬》은 장편으로는 1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선 굵은 전작들과 달리 판타지와 역사, 정치, 풍자가 어우러진 독특한 소설이다.

배경은 서해에 있는 가상의 섬 ‘솔섬’. 작은 섬이 조금씩 떠올라 제주도 만한 큰 섬이 되자 권력과 이윤을 차지하려는 투기꾼과 철새 정치인, 기업인, 조직폭력배, 종교인이 몰려든다. 황송공화국이 수립되고 각종 음모와 권모술수, 비리, 쿠데타 등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실을 풍자한다. 2007년에 시작해 1945년으로 끝나는 시간의 흐름도 흥미롭다. 왜곡된 정치행태, 퇴영적인 역사에 대한 작가의 메시지로 읽힌다.

그는 이 작품을 ‘막소설’이라고 불렀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이 싫어서 ‘막소설’이라고 했어요. 판타지 하면 공주나 괴물이 나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막’은 우리말이고, 짧아서 좋아요. 그리고 자유를 뜻하죠. 상상력에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소설에는 ‘떡값’ 2억원을 받은 정치인에게 2억원어치 떡을 먹이고, ‘철새 정치인’이 실제로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는 등 판타지 요소가 강하다. 인터넷만 하던 은둔형 외톨이가 아예 인터넷 세계로 들어가 가상의 나라를 다스린다는 설정을 통해 인터넷 문화를 비판하기도 한다.“환갑이 지나고 ‘왜 나는 더 좋은 작품을 쓰려고 나 자신을 학대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원이 과장,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처럼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존 스타인벡도 《분노의 포도》를 마흔이 되기 전에 썼잖습니까. 어쩌면 내 생애에서 가장 좋은 작품은 이미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안씨는 영자신문 기자 출신으로 코리아타임스 문화부장을 지냈고, 1975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시작으로 150여권을 번역했다. 부인 박광자 충남대 독문과 교수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을 뒀다.

“저는 독일어 불어는 겨우 사전 찾아 할 정도이고 영어밖에 못하는데 아내가 독문과 교수이고, 큰딸은 13개국어, 수녀인 작은딸은 히브리어·히타이트어 등 8개국어를 해요. 다 합치면 25개국어나 돼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유엔본부라고 부릅니다.”올해 계획을 묻자 “지금 하는 일, 글쓰기를 계속하는 것 말고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는 솔섬을 배경으로 절대 선지자가 등장하는 내용의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즐거우려고 쓰는 것이죠. 죽기 전에 몇 권을 더 쓸 것인지, 얼마나 빨리 쓸 것인지 상관하지 않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쓸 생각입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