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다윈은 집단지능을 이끌어 낸 선구자"

저자 인터뷰 / '다윈 지능' 쓴 최재천 교수

생물학 범주 넘어선 진화론 '지식 생태계' 곳곳에 영향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의 의미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역사에서 진화론만큼 탄압을 많이 받은 것도 없지요. 150여년 동안 줄기차게 탄압을 받았지만 살아남아서 이제는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다윈 이론이 옳고, 그만큼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통섭(統攝)’의 지식인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58). 다윈 전문가인 그가 현대사회 곳곳에서 진화론 흔적을 찾아낸 책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 1만5000원)을 펴냈다. 최 교수는 150여년 전 태동한 진화론이 혹독한 시련과 담금질을 겪으며 인류 문명과 다른 학문세계로 빠르게 퍼졌다고 설명했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행동경제학·신경경제학이 부상했습니다. 경제주체인 인간을 이성적 입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심리를 읽으려는 것이죠. ‘다윈 경제학’이 대세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진화론이 경제학에까지 파고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실생활에도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는 다윈 이론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됐는데도 우리 사회는 이를 이해하는데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윈 지능》은 진화론이 발전해온 과정과 진화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진화론이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철학 경제학 법학 문학 정치학 등 인류의 지식 생태계에 미친 영향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책의 제목인 ‘다윈 지능’은 다윈 이론이 걸어온 궤적이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분석에서 나왔다. 다윈 이론이 후대 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하면서 현대인의 사회 생태학적 행동을 풀이하는 주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는 것. “다윈처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논의하도록 집단 지능을 이끌어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자신을 구심점으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었죠. 죽은 다음에도 저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을 부려먹고 있잖아요(웃음).”

그는 “요즘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지만 우리 사회의 집단행동에서 지성을 운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그저 소박하게 여러 두뇌들이 동시에 한 가지 주제로 수렴한다는 의미에서 ‘집단 지능’으로 부를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책은 인간사회의 복잡한 남녀관계와 그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사회현상들도 설명한다. 대표적 사례가 성(性) 선택 이론. 다윈이 《인간의 유래》에서 성 선택권이 대부분 암컷 손에 쥐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런 이론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게 들어맞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해 거의 모든 생물종에서 구애 행동을 보이는 쪽은 암컷이 아닌 수컷이며, 이는 혼자서는 종족 번식을 할 수 없는 진화론적 한계 때문이라는 것. 또 인간 남성은 여성의 배란기를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 변화로는 알아챌 수 없어서 한 명의 여성과 오랫동안 동반관계를 유지하려고 일부일처제라는 결혼 제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다윈의 이론이 약육강식, 생존경쟁 등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공생과 공감의 개념이 깔려있는 굉장히 따뜻한 이론”이라고 강조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