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세대 교체…'포털 황제' 제리 양 시대 막 내렸다

미국 포털사이트 야후의 공동 창업자 제리 양(43ㆍ사진)이 사임했다. 제리 양은 이사 자리를 비롯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야후와의 16년 동거 생활을 마무리했다.

1995년 데이비드 필로와 야후를 공동 창업한 제리 양은 2007월 6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매각 협상에 실패하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책임을 지고 CEO에서 사퇴했다. 그는 매각 실패 후 지난해 11월까지 다른 인수 후보자들과 접촉하는 등 경영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제리 양은 야후에서 완전히 떠나게 됐다.




◆대만계 미국인의 아메리칸 드림
제리 양은 1968년 대만에서 태어나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곁엔 홀어머니와 남동생뿐이었다. 아시아계 이민자에게 주어진 일은 청소나 빨래 같은 허드렛일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청소를 해서 벌어오는 생활비로 어렵게 공부했다. 스탠퍼드대학교에 입학한 후 비로소 성공 가도에 들어섰다.대학원에서 조교 생활을 하던 그는 '제리 양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를 발행해 인터넷 사이트를 주제별로 엮어 정리했다. 이 가이드가 입소문을 타자 스탠퍼드 학생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네티즌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창업을 결심, '야후'를 설립했다. 야후는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필로의 어린 시절 애칭이다.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세쿼이어캐피탈은 벤처기업이던 야후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년 만에 직원은 100여명으로 늘었다. 야후의 성공에 힘입어 제리 양은 '포털의 황제'로 유명해졌다. 경제주간지 '포브스'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다. 이후 중국 웹사이트 알리바바닷컴을 인수, 중국 시장으로도 활로를 넓혔다.

인터넷 초창기 야후를 거치지 않은 웹서핑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야후의 입지는 독보적이었다. 포털 불모지에서 모든 길은 야후로 통했다. 제리 양에게 야후는 말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미국 이민자들에게 제리 양이라는 이름은 꿈과 동의어였다. ◆경영 실패…구글·페이스북에 밀려 고전
그러나 주력사업을 키우지 않고 검색 기능도 차별화하지 못한 야후는 후속 주자들에게 ‘포털의 황제’ 자리를 내어줬다. 검색, 커뮤니티, 메일, 소셜네트워크를 강점으로 내세운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야후의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야후는 결국 자신이 키운 구글에 1위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야후는 2007년 공동창업자 제리 양을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혔다. 그는 경영 일선에 복귀해 야후의 부활을 꾀했지만 1년 만에 물러나야 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 초 스티브 발머 MS CEO는 야후에 공개 인수를 제안했다. 구글을 견제할 대안으로 야후 인수를 제안했던 발머는 협상 결렬 후 온라인 검색 광고에 전념했다. MS의 검색엔진 '빙'은 지난해 12월 점유율 15%대를 유지하며 구글에 이은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야후는 경쟁사의 약진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구글과의 협상도 이뤄내지 못했다. 제리 양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잇단 인수 철회는 회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2008년 말 야후의 매출액은 72억달러였다. 그러나 2009년 64억6000만 달러, 2010년 63억2400만 달러로 꾸준히 감소했다. 최근에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시장 장악으로 광고 시장에서도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의 미래 “약자 이미지 버리고, 핵심 역량 키워라”
새 시대를 맞은 야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수년간 야후는 이렇다 할 핵심 사업이 없었다. 구글의 검색,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주력 서비스가 없었단 의미다.

경영을 이어 받은 톰슨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하고 경쟁 업체에 쫓기는 ‘약자’ 이미지를 벗어던질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와 더불어 알리바바와 야후재팬 등 아시아 자산을 팔 것을 제안했다. 인터넷 초창기부터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핵심 사업에 집중하라는 가이드도 내놨다. 이를 기반으로 광고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마케팅 전략이다.

제리 양은 “이제 야후 밖에서 다른 관심사를 쫓을 시기가 왔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흥미로 시작한 사업을 내려놓고 또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나서겠단 의미다. 그는 “내 생애 가장 신나고 보람찬 경험의 대부분은 설립부터 이제까지 야후에서 보낸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로이 보스톡 야후 이사회 의장은 “제리 양이 제안한 참신한 전략은 소중했다”며 “비전을 품은 선구자로 야후에 기여했다”고 그를 평가했다. 한경닷컴 박은아 기자 sn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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