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 "히말라야 등정이 맺어준 네팔 봉사활동에 뿌듯"

한경과 맛있는 만남

히말라야 16좌에 오른 엄홍길 씨와 우연한 만남
네팔 초등교 설립 의기투합

판사시절 美유학서 로펌 생각
79년 김앤장 합류…30여년째 대표

사내 공익봉사위원회 만들어 다문화가정 등 무료법률 자문

왜 하필이면 추어탕 집일까. 지난 26일 저녁, 이재후 김앤장 대표 변호사가 인터뷰 장소로 안내한 곳은 종로구 통인동에 있는 추어탕 전문점 용금옥이었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이는 서울식 추탕이 메인 메뉴. 남도 추어탕도 메뉴에 있는데 둘 다 가격이 1만원이다. 아시아 최고 로펌 대표와 만남이면 근사한 곳에서 와인 한잔 정도는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 대표는 “자유당 때도 있던 집”이라고 소개했다. “다동에서 출발했는데 분가해 지금은 두 곳에서 같은 이름으로 영업 중”이라며 40년 넘은 단골답게 식당 역사를 줄줄 꿰고 있었다. 용금옥은 1932년생이다. 고풍스러운 한옥에서 80년 동안 추어탕 하나로 가게의 명맥을 이어왔다. 1965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48년째 법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 대표와 용금옥은 닮은 점이 있었다. 글로벌 로펌 대표의 요즘 관심사가 궁금했다. “매달 엄홍길 씨, 후원자들과 함께 산을 타요. 북한산 도봉산 등 서울 근교만 해도 세계적인 산들이 많아요.” 이 대표의 산행은 서울고등학교 생물반 시절부터 시작됐다. 안나푸르나를 비롯해 히말라야의 4000~5000m 고지를 다섯 번 등반했고,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5895m)를 등정하기도 한 ‘산사나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이유로 산을 찾는다. 2008년 5월에 만든 엄홍길 휴먼재단 이사장 일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엄홍길 씨를 알게 됐는데 재단을 만들어 함께 네팔을 돕기로 의기투합한 것. 엄씨의 눈물어린 사연이 계기였다. 엄씨도 초기에는 에베레스트 등반에 많이 실패했는데 첫 등반에서 그를 돕던 세르파가 희생당했다.

그 세르파는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새신랑이었다. 4000m 고지의 팡보체라는 마을에서 어린 신부와 모친을 만난 엄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떤 식으로든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6좌 등반에 성공한 엄씨는 이 대표와 재단을 만들었고, 그 이듬해 첫 번째 사업으로 팡보체 마을에 초등학교를 지어 세르파 신부와의 약속을 지켰다. 삽을 뜬 지 1년 만인 2010년 5월 팡보체 초등학교 기공식을 가진 데 이어 작년 2월23일 타르푸 초등학교 준공식, 4월12일 룸비니 초등학교 기공식 등 학교 짓기가 순풍에 돛단 듯 이뤄졌다. 회비 1만원을 내는 회원이 1000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16좌 등반에 맞춰 네팔에 16개 초등학교를 지을 계획이다. “3박4일을 걸어가서 팡보체 준공식에 참석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었어요. 의사들도 같이 가서 진료하고 약도 주고 학용품도 전해주고 왔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네팔 얘기에 집중하면서 잘 차려진 음식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이 대표가 한숨 돌리느라 탕에 숟가락을 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이 집의 명물인 미꾸라지가 한마리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미꾸라지가 다들 어디갔지? 주인 양반 여기 좀 봅시다.”

손님의 득달같은 불호령에 안주인이 대령했는데 얼굴에 긴장한 표정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는 수십년째 노포(老鋪)를 이끌고 있는 베테랑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통으로 된 미꾸라지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갈아서 넣었어요. 통미꾸라지를 따로 가져다 드릴게요.” 안주인의 친절한 설명에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대표의 얼굴에 분기가 사라지고 특유의 미소가 가득 했다. 안주인은 이때다 싶었는지 선 채로 음식점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다. “오늘 낮에도 국무총리를 지낸 분이 오셨는데, 예전에는 용금옥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했어요.”주제가 애초 기획안과 달리 손에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지 30분이나 지났지만 본론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최고 법률사무소 김앤장. 하지만 신비의 섬처럼 알려지지 않은 영역은 아직도 많다.

이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질문 공세를 쏟아부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 하셨다면서요.”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가수 카라는 아세요.”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다지 장황하지 않았다. “하다 보면…그게(서울대 수석 입학) 별게 아니죠.” “중매결혼 했어요. 판사할 때 소개받아 1년쯤 사귀다 결혼했어요.” “카라는 모르고, TV를 가끔 보니까 소녀시대, 원더걸스는 알죠.”

다만 부친(법학자, 문인으로 활동했으며 홍익대 총장과 과거 문교부 차관을 지낸 고 이항녕 선생)과 관련한 질문에는 길게 설명했다. “일제시대에 관리를 하신 것이 후회가 돼 해방 이후 관계(官界)는 안 가신다며 초등학교(청룡국민학교) 교장부터 시작했어요.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책(유고집)을 한 권씩 드려야겠네요.” 교육자로서 그의 부친은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아버지가 특별히 앉혀 놓고 가르친 것은 없었어요. 우리가 보는 거죠. 기억나는 것은 거짓말에는 굉장히 엄격하셨어요. 또 ‘지성이면 감천이다’, ‘열심히 해라’는 말을 가훈같이 말씀하셨어요.”

다시 음식 얘기로 돌아섰다. 용금옥에서는 메인 메뉴명이 추어탕이 아니고 추탕이다. 미꾸라지 ‘추(鰍)’에 물고기 ‘어’를 붙이면 미꾸라지 물고기탕이 돼 동어반복은 틀림없지만 ‘어’자를 뺀 진짜 이유는 주인도 몰랐다. 서울식 추탕 육수는 사골을 푹 고아 만들어 고춧가루를 풀어서인지 색깔이 벌겋고 국물 맛도 육개장 같다. 추어탕의 미꾸라지가 모자랐던지 이 대표의 젓가락은 함께 나온 미꾸라지 튀김에도 분주히 오갔다.

얼큰한 국물 맛과 담백 고소한 튀김 맛에 잠깐 취해 있는 이 대표와 김앤장에 합류할 당시인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앤장은 1973년 김영무 변호사가 자택이 있던 종로구 운니동에 사무실을 낸 것이 시초다. 이 대표가 합류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979년이다.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김 변호사를 그 이전에는 이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는데 한솥밥을 먹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대법원 재판연구관까지 15년 동안 판사를 하다 부장도 안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재판연구관 하다 나온 1호 변호사일 것입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부장판사는 해보고 나오는 게 관례였던 만큼 이 대표의 행보는 파격이었다.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니까 금전적인 문제도 없지 않았고, 로펌으로 가면 부장판사 같은 경력이 필요 없겠다 싶었죠. 판사 시절 유학가서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미국변호사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전문 로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영무 변호사는 처음부터 로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흔쾌히 뜻을 같이하게 된 것입니다.”

"법률시장 개방되면? 젊은 변호사 일자리 느는거죠"

인터뷰가 1시간을 넘었지만 이 대표의 꼿꼿한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1940년생이면 칠순을 넘긴 나이인데 등산으로 다져진 덕분인지 체력적인 면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옆집 아저씨처럼 격의 없는 대화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매력은 1979년 합류하자마자 떠안은 대표직을 지금까지 30여년간 맡고 있는 힘일 것이다. 김영무, 장수길 변호사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지만 대외적인 ‘얼굴마담’을 이 대표가 전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호사 ‘선발 기준이 뭐냐’ ‘평균 연봉은 얼마인가’ 등 김앤장 해부 작업에 또다시 돌입했다. 하지만 ‘사무실 얘기’는 슬쩍슬쩍 잘도 피했다. 이 대표는 대신 “젊은 변호사들도 공익활동에 적극 동참하더라”고 동문서답했다.

시간당 수임료가 수십만원인 변호사들이 어떻게 봉사활동하는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오래전에 사무소 내에 공익봉사위원회를 만들어 나눔의 집이라든가 소망의 집 같은 불우이웃들이 있는 곳을 변호사와 일반 직원들이 직접 근무시간을 빼서 찾아가고 있습니다. 1년에 열 번 이상은 가는 것 같습니다.”

추어탕을 바닥까지 긁어서 싹 비우고 나니 어느새 식혜가 나왔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설 시간이라고 음식점에선 신호를 보낸다. 물어볼 것은 아직 산더미 같은데 벌써 인터뷰는 2시간을 넘겼다.

급한 대로 두서없이 이것저것 가진 카드를 꺼냈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은 법률시장 개방에 따른 대책. “올해 (외국 법률사무소가) 몇 개가 오픈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계적으로 들어오니까 경쟁 관계가 될 거고. 좋은 의미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 젊은 변호사들이 취업할 기회도 되는 거고.” 말투로만 봐선 크게 염려하지 않는 듯했다. 일본의 경우도 대형 로펌은 개방에 크게 휩쓸리지 않은 전례가 있긴 하다.

이제 정말 자리를 정리할 시간이라고 생각해 일어서려는데 이 대표가 갑자기 한마디 더 던졌다. “요즘 좌회전을 하면서 자동차의 깜빡이 신호등을 안 켜는 차들이 많아요.” 얼른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았다. ‘이게 바로 이 대표가 오늘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기 드는 것도 얼마 없고, 힘든 것도 아닌데 안 지켜요. 10대 중에 1대나 깜빡이를 켤까. 차선 지키자는 TV 캠페인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는데 도로아미타불이 됐어요. 사소한 것 같지만 기본에 대한 생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법원 검찰의 최근 동향에 대해서도 그는 안타까움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몇 가지 사건 때문에 검찰에 대한 신뢰가 깨졌어요. 경찰과 수사권 싸움하는 걸 보면 옛날 검찰이 아닌 것 같아요. 아무튼 검찰이 다시 신뢰를 되찾아 법 집행만큼은 엄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도 소신을 너무 주장하면 안 되죠. 판결은 사상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 아닙니까.”

김병일/이고운 기자 kbi@hankyung.com이재후 대표의 단골집 용금옥

서울식 추탕 전문 … 前총리 등 유명인 자주 찾아1932년 문을 열었다. 서울식 추탕을 내는 몇 안 되는 추어탕 전문점이다. 서울 통인동 용금옥은 다동 용금옥에 시집온 며느리 한정자 씨가 분가해 차렸다. 한옥 등 옛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추억에 목마른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울식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는 것이 특징이지만 요즘은 젊은층의 입맛에 맞춰 미꾸라지를 갈아 넣는다. 통미꾸라지를 원할 경우 따로 주문하면 된다. 사골로 육수를 낸 뒤 각종 버섯과 유부 두부 대파 등 10여 가지 식재료에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갈아 우거지 된장 등과 함께 끓여내는 남도 추어탕은 맛이 구수하다. 버섯육개장을 비롯해 모두 1만원이다. 통미꾸라지를 더 맛보고 싶으면 추어튀김을 시키면 된다. 간판에 쓰인 용금옥(湧金屋) 옥호는 이 집의 오랜 단골인 신영복 교수의 작품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 일요일은 쉰다.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02)777-4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