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월급 털어 산 유물 2500점 기증"
입력
수정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야토기 15점 기증한 조만규 씨“전국 곳곳에 있는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해 왔는데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품을 전시하게 됐지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유물을 보고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부산의 ‘유물 기증 마니아’로 알려진 조만규 씨(부산 해운대구 우동·79·사진)는 최근 가야시대의 ‘토기 고배(高杯)’ 15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고배는 삼국시대 다리가 붙은 접시다. 조씨가 기증한 고배는 3세기 가야 지배층의 것으로 추정된다. 조씨는 그동안 많은 유물을 기증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처음으로 기증한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다. “보물급 이상이 되지 못하면 기증이 어려운 국립중앙박물관에 제가 내놓은 유물이 전시될 수 있어 기쁩니다. 남아 있는 500여점의 유물도 세상에 내놓고 떠날 계획입니다.”
조씨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전국의 박물관과 학교에 꾸준히 기증했다. 1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2500여점의 유물을 제공했다. 기증한 유물은 부산대와 부경대, 동아대 등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40여곳에 전시돼 있다. 오는 3월 개관을 앞둔 경남 고성박물관에도 삼국시대 토기 등 63점을 기증했다.
“기증한 유물은 지금 돈으로 따지면 4억~5억원짜리 아파트 10채 정도는 될 것입니다. 고생해서 모은 유물을 왜 공짜로 기증하느냐고 주위에서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귀한 유물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저의 신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평양에서 태어난 조씨는 6·25전쟁 직후인 1954년 홀로 부산에 정착했다. 환경처리회사인 부산북부위생공사 대표까지 지내다 2005년 퇴임했다. 직장생활 40년간 월급 가운데 절반은 유물을 사들이는 데 썼다. 유물 모으기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늘 도자기 같은 유물을 열심히 닦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유물을 사모았습니다. 30세부터 75세까지 전국의 2000여개 고미술품점을 돌아다니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유물을 판별할 줄 몰라 고생도 많았다. 일본유물 관련 책을 사 2년 동안 독학했다. 유물 상점을 찾아다니면서 유물가격과 가치를 꼬치꼬치 묻고 구입도 했다. 50여년 동안 유물을 매일 보면서 수집해 보니 이젠 한번만 봐도 그 가치를 알 수 있게 됐다.
조씨는 그동안의 통 큰 기증으로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거제박물관과 미리벌민속박물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사설박물관을 지을 생각도 했지만 전문가들의 손에 모두 맡기면서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국민들과 학생들이 유물을 보고 조상의 숨결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