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맛본 中 현실 그렸더니 세계가 깜짝"

World artist - 중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쩡판즈

작년 경매 낙찰총액 640억원…생존작가 중 2위 랭크
11월 런던 가고시안서 개인전

'가면' 거쳐 '동물'시리즈 몰두
중국화단 서구중심서 탈피…전통 문화가치로 회귀 조짐
“중국 현대미술은 이제 출발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시장만 거론하던 단계에서 점점 예술에 초점을 맞추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거든요. 단순히 북적대는 구경거리에서 가장 좋은 것을 식별할 줄 아는 ‘내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영국 런던 가고시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 쩡판즈(曾梵志·43)는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21세기를 살면서 아무도 없는 산골에 들어가 18세기 모습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사회와 연관이 깊고, 그 가치는 시간이 지난 후 대중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쩡판즈는 장샤오강, 웨민쥔, 팡리쥔과 함께 세계 미술시장을 흔드는 중국 현대미술 ‘빅4’ 작가다. 중국 미술 3세대로 불리는 그는 자본주의 맛을 본 중국 사회의 혼란상을 가면 쓴 남녀의 뻔뻔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한 ‘가면’ 시리즈로 유명하다.

‘가면 1996 NO.6’은 200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7536만홍콩달러(105억원)에 팔려 자신의 최고 낙찰가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에서도 5700만달러(약 640억원)로 생존 작가 중 자오우지(9000만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태어나 후베이미술학교를 졸업한 쩡판즈가 세계 화단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의 현대인을 표현하는 데 전형적인 캐릭터를 고수하지 않고 작품 세계를 꾸준히 바꿔나간다는 점이다. 학창시절 독일 표현주의 화풍에 빠진 쩡판즈의 작품은 5~10년 간격으로 진화해왔다. 살벌한 병원 수술실 풍경이나 정육점의 고깃덩어리들을 표현한 초기 ‘풍경’ 시리즈를 시작으로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등의 ‘초상’ 시리즈, ‘가면’ 시리즈, ‘선묘’ 시리즈, 최근의 ‘동물’ 시리즈까지 소재와 표현방식이 크게 변화돼왔다. 그는 2010년부터 호랑이 사슴 원숭이 등 동물 그림에 푹 빠져 있다. 동물을 그리는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탐색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고향을 떠나 베이징에 둥지를 튼 뒤 ‘마스크 작가’로 각인된 그는 주먹을 꽉 쥔 듯한 큰 손을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취득하고 소비하려는 병든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그의 그림에서 가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면을 벗고 등장한 화면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령 같은 이미지로 대체됐다.

중국 전통 수묵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중국 현대미술의 최근 경향에 대해 “서구 지향에서 아시아적 문화 가치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1980~1990년대에 교육받은 미술가들은 전통보다 서구의 패러다임에 초점을 두면서 전통이라면 무조건 멀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최근엔 서구 현대미술의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중국적인 전통으로 회귀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저 역시 어떤 심볼을 작품에 묘사해 중국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요. 제 삶과 사상을 표현할 때 중국이 묻어나도록 하지요.”

그는 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 미술에 관심이 높은 것은 무엇보다도 중국 경제 호황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중국 현대미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작가들도 더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무엇보다 창작의 자유가 중요합니다. 시장의 영향 혹은 어떤 요소도 창작의 생명인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8세 때부터 그림을 시작한 그는 “음악을 통해 미술을 얻는다”고 했다. “미술과 음악은 제 내면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씩 작업을 위해 베이징 스튜디오에 갈 때 미리 조수에게 전화를 해서 원하는 음악을 틀어놓으라고 부탁해요. 음악을 듣다 보면 그림이 상상되고, 제 작품을 보노라면 음악이 들리거든요.”

그가 화가를 선택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열 살 되던 해였어요,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어머니께서 굳이 어린 저를 데리고 항저우에 갔죠. 라일락 향기가 온 천지에 퍼져 있었는데 꿈을 꾸는 듯한 도취를 느꼈습니다. 그런 체험과 추억이 큰 영향을 끼쳤죠.”

그는 유럽 미술 발전에 프랑수아 피노 PPR그룹 회장 같은 컬렉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얘기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많은 기업인들이 높은 예술적 소양을 갖추고 있고 예술에 대한 열정도 대단합니다. 작가 초반 시절 피노 회장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그는 “상업성이 더 강한 작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예술가라면 근본적으로 그것과 무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그림에 빠져 살아온 내 인생이 최고의 퍼포먼스이자 걸작”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