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파란 눈 CEO', 약일까 독일까

일본 기업 외국 CEO 내부 갈등 키우고 잇따라 사임
닛산ㆍ두산ㆍ삼성 등 외국 임원 성공도 적지 않아

하워드 스트링거 일본 소니 회장, 마이클 우드포드 올림푸스 사장, 제스 바탈 노무라 부사장. 이들의 공통점은 각 회사 최초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0)이자 회사 부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물러났단 점이다. 2000년 중반 이후 일본 기업들은 해외 사업 확대와 글로벌화를 앞세워 외국인 CEO를 적극 영입했다. 하지만 기대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내부 경영진과 불화를 빚으면서 외국인 CEO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LG전자는 과거 남용 전 부회장 재직 시절 외국인 임원들을 대거 영입했지만 의사 소통과 문화의 부재로 내부 갈등만 키웠다. 결국 구본준 부회장 취임 이후 외국인 임원을 꾸준히 정리했다. 지금은 그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 스트링거 소니 회장, 구원투수 못되고 강판 당해이달 1일 소니는 스트링거 회장 겸 CEO 대신 히라이 가즈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신임 CEO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외국인 최초로 소니 수장을 맡았던 스트링거는 6년 반 만에 회사를 떠나게 됐다. 그는 6월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스트링거 회장의 사임설이 기정사실화됐다. TV사업부는 7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애플, 삼성전자 등에 밀려 3%선의 점유율만 간신히 유지하는 등 부진이 계속됐기 때문. 자연재해인 대지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해엔 최악의 해킹사고까지 겹쳐 스트링거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5년 위기의 소니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그는 경영의 감독과 집행을 분리하는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등 개혁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본 고위 임원을 잇따라 감원시켜 경영진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일본 최대 투자 은행인 노무라의 제스 바탈 부사장은 이 회사가 미국 리먼을 인수한 후 합류한 리먼 출신이자 최초의 외국계 CEO였다. 그는 노무라에서 비용 절감과 글로벌 확장 전략 등을 추진했지만 실적 부진에 별다른 타개책이 되지 못했다. 특히 일본인 경영진들과 의견 충돌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즈(FT)등 외신들은 바탈 부사장이 일본 경영진의 의사 결정 속도에 실망을 느끼고 회사를 떠났다고 전했다.

마이클 우드포드 올림푸스 사장의 경우 지난해 10월 회사 내부 경영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취임 6개월 만에 해고됐다. 그는 2008년 올림푸스가 의료기기 업체 자이러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과다한 자문료를 지불한 데 의혹을 제기하며 기쿠카와 쓰요시 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 이로 인해 100년 기업 올림푸스 사상 최대의 회계 부정 사실이 드러났고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스트링거 회장이나 바탈 부사장과 상황은 다르지만 우드포드 사장 역시 일본 기업의 경영 풍토나 문화 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영진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 LG 영입됐던 외국 임원, 융화 실패…대부분 회사 떠나

국내 LG전자는 2008년 남용 전 부회장 시절 글로벌 회사로의 도약을 위해 마케팅, 인사, 구매 등에서 외국인 임원을 중용했다. 하지만 이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회의 능률이 떨어지고 의사결정이 오히려 늦어진다는 내부 불만이 높았다. 결국 남 전 부회장 사퇴 후 외국인 임원들은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재계 관계자는 "서구식 경영모델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외국인 CEO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영진과 종종 마찰을 빚는다" 며 "외국인 CEO들이 '독'이 아닌 '득'이 되려면 그 기업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 또한 외국인 경영자에 대한 폐쇄적인 생각을 버리고 이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카를로스 곤 일본 닛산 자동차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개혁으로 추락하던 닛산을 부할시켰다.

외국인 CEO로는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훈장을 받았다. 2005년에는 르노 회장으로 임명되면서 닛산과 르노의 CEO를 겸임하고 있다.

국내는 제임스 비모스키 두산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06년 경영권 분쟁과 분식 회계 등으로 얼룩졌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영입한 최초의 외국인 CEO였다. 비모스키 부회장은 국내 경제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국인 CEO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임원의 숫자를 해마다 늘리며 이들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글로벌 헬프 데스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회사 관계자는 "외국 임원의 채용이 결정되면 본국에 있을 때부터 지원이 시작되고 한국에 오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관련한 일까지 모두 지원한다" 며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장을 함께 봐주기도 하는 등 이들이 회사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상 생활의 모든 부분까지 도와준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