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700조원 넘보는 '중관춘 클러스터'…샤오반기업 '천국'

인재 강국 '차이나 파워'

(1) 첨단기술 전쟁터로 변한 중관춘
(2) 해외 유학파의 귀환
(3) 글로벌 기업의 R&D 허브

R&D 인력 13만명 밀집
대학 40곳·연구소 200여개…年 로열티 수입만 42조원

칭화·베이징大가 기업 설립
新기술 개발로 경쟁력 확보…매출 수조원대 대기업 키워

< 매출 : 2020년 >
< 샤오반기업 : 학교가 설립한 기업 >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 정문을 나서면 오른편으로 칭화과기원(淸華科技園)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고층빌딩엔 구글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왕이(網易)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로고가 곳곳에 걸려 있다. 한 블록 떨어져 있는 베이징대까지 끼고 있는 이곳은 중국 최대의 경제특구이자 ‘혁신시범구’로 불리는 ‘중관춘’의 중심부. 중국의 대표기업은 물론 글로벌기업들이 집결, 연구경쟁을 벌이는 중국첨단산업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매출 1700조원의 ‘기술특구’ 목표 베이징 중관춘에 있는 보안솔루션 기업인 선저우룽안(神州融安). 이 회사에 채용된 연구인력은 10명이다. 그러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은 100명이 넘는다. 인근에 자리한 베이징대나 중국과학원 등과 산학연(産學硏) 협력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공동 개발제품이 잘 팔렸을 경우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연구비를 지출한다.

2년 전 친구 5명과 이 회사를 세운 샤오이(肖毅·40) 사장은 “중관춘의 가장 큰 장점은 필요한 인재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중관춘에 들어오면 이런 협업시스템을 통해 단기간에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중관춘은 중국 최대의 과학기술인재 밀집지역이다. 중국 최대 PC업체 롄샹과 대표적 인터넷검색회사인 바이두를 비롯한 1만7000여개 첨단기업의 본사와 연구센터가 이곳에 몰려 있다. 중관춘에 있는 연구개발인력만 1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베이징대나 칭화대 등 40여개의 대학과 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 등 국립 과학연구소 200여개가 밀집해 있다. 중관춘에 들어온 기업들은 선저우룽안처럼 대학 및 연구기관과 협력을 통해 기술을 확보한다. “2010년 중관춘에서 발생한 로열티 수입만 2478억위안에 달한다.”(중관춘관리위원회) 궈훙(郭洪) 중관춘관리위 주임은 “작년 말 중관춘의 회사 중 국내외에 상장된 기업 수는 200개인데 2014년엔 실리콘밸리(250개)를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다.국무원은 지난해 ‘중관춘 발전 10개년 계획’을 승인했다. 2020년까지 중관춘을 세계 최고의 과학중심 단지로 만드는 게 목표다. 중관춘을 중국 최초의 인재특구로 지정하고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바이오 제약,신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기술과 산업 주도권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을 각각 2~3개 육성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중관춘 내 기업들의 연간 총매출이 2020년에 2010년(1조6000억위안)의 6배가 넘는 10조위안(1700조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대학 등 기업주도형 협력 강화

이런 목표 달성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곳은 사이언스파크(科技園). 일종의 산학연 협력 시스템이다. 대학이 기업의 연구과제와 기업을 연결해주고 유망한 실험실 기술에 대해 투자를 유치하는 역할을 하는 산학협력의 메카다. 칭화과기원에 입주해 있는 SK텔레콤 중국기술원 방용남 전략팀장은 “칭화대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 기업들이 앞다퉈 연구실 과제에 참여하려고 경쟁을 벌인다”며 “칭화대의 유명 교수들과 전문적인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기업주도형 산·학 협력도 나타나고 있다. 지리자동차가 베이징에 베이징지리대학을 만들고, 태양광업체인 황밍(皇明)이 산둥성 더저우에 황밍태양에너지공정기술학원을 설립한 게 대표적이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대학 기업 연구단체 간 협력체제 구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 중국이 단기간에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샤오반(校班)기업의 도약칭화대 동문에서 왼쪽으로 뻗어 있는 슈앙칭루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학교 담벼락과 붙어 있는 25층 높이의 트윈타워를 볼 수 있다. 칭화대의 간판 샤오반기업(학교가 설립한 기업)인 칭화퉁팡(淸華同方)이다. 중국 PC시장 3위 업체로 지난해 매출 182억위안(3조900억원), 순이익 4억8000만위안(816억원)을 기록한 대기업이다. 보유특허가 2000개가 넘어 중국의 대표적인 기술기업으로 꼽힌다.

칭화대는 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를 통해 칭화퉁팡 등 3개 상장사를 포함한 21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또 18개 기업에는 주요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칭화홀딩스의 2010년 매출은 291억위안(4조9470억원). 중국 500대기업 중 217위에 해당된다.

베이징대의 샤오반기업인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은 규모가 더 크다. 2010년에 매출 520억위안(8조8400억원), 순이익 26억위안(4420억원)을 기록해 중국 기업 중 121위에 올랐다. 이 회사 역시 30개에 가까운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샤오반기업은 베이다팡정과 칭화퉁팡만이 아니다. 전국 200여개 대학이 기업을 설립해 ‘경영’하고 있다. 학교기업이 거의 없는 한국의 대학과는 대조적이다. 천스이 베이징공학원 교수는 “중국의 대학들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샤오반 기업들을 키워내며 산학협동을 넘어 산학일체의 길을 걸어왔다”며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산업기반의 기술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