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란 리스크' 대비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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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문제로 서방국과 갈등 격화현대 문명사회에서 석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원 중에서 석유가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천연가스를 포함할 경우 50%를 훌쩍 뛰어넘었다. 세계 각국이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및 대체 에너지 개발에 노력한 결과 과거에 비해 그 비중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완전한 대체 에너지원의 부재와 광범위한 활용성 등으로 석유의 우월적 지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제재 앞두고 유가급등 움직임
에너지절약·효율성제고 힘써야
이성한 < 국제금융센터 소장 >
전 세계 석유 매장량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동지역에서 석유패권주의와 이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빈발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국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사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중동지역의 확인 매장량은 7525억 배럴로 전체의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와 베네수엘라 등을 포함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매장량은 1조684억 배럴로 그 비중이 무려 77%에 달한다.
중동에서의 석유패권주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근대 석유산업의 초기인 20세기 전반부에는 소위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라 불리는 7대 메이저들이 전 세계 원유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부족간정파간 분쟁이 있기는 했지만 석유자원을 둘러싼 갈등과는 거리가 있었다. 서방국들의 대(對)중동 외교정책도 당시 소련의 팽창정책을 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 등 서방국들의 이스라엘 지지에 반발해 아랍 산유국들은 원유수출금지라는 초강수로 맞대응했고,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7%에 해당하는 물량이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유가가 6개월여 만에 4배 이상 급등했다. 석유의 무기화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중동지역에서의 분쟁은 직·간접적으로 석유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말할 것도 없고, 2003년 이라크 전쟁도 표면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제거가 목적이었지만 서방국들의 석유자원 선점이 내면에 깔려 있다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이후 근 10년 만에 중동에서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핵 문제를 놓고 이란과 서방국들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연초부터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가와 밀접한 두바이유 가격은 최근 배럴당 120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이란은 2010년 기준 하루 생산량 425만 배럴, 점유율 5%의 세계 5위 산유국이며,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관할하고 있어 이란 리스크는 원유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하기에 충분하다. 1차 오일쇼크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사실 시장 수급에 여유가 있고 산유국들의 여유생산능력이 넉넉하다면 이 정도 공급차질 우려는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석유 블랙홀’인 신흥국의 등장으로 타이트한 수급 여건이 일상화됐고, OPEC의 전 세계 수요 대비 여유생산능력 비율도 2~3%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소규모 공급차질에도 유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7월이면 미국의 이란 원유수출 제한 조치와 유럽연합(EU)의 이란산 원유수입 금지 조치가 시행된다. 이란과 미국의 대립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된다면 그 결말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계절적으로 석유수요가 늘어나는 여름철에 이런 사태가 현실화한다면 석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무덥고 힘든 시기를 겪지 않을까 우려된다. 에너지 절약 및 효율성 제고, 해외유전 확보, 대체에너지의 적극적 개발 등 대안 마련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시기이다.
이성한 < 국제금융센터 소장 zzooc@kcif.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