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복지포퓰리즘 어떻게 막을 것인가?

권위주의와 부정부패가 원인…불공정구조·정경유착 개혁을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복지 포퓰리즘이 문제다. 지난 대선에서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는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에는 복지 구호를 들고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자기 안마당을 빼앗긴 듯 더 센 공약을 하더니, 이제 여야 가리지 않고 한 건 하자는 식이다. 한국의 복지체제가 미비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나라가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 포퓰리즘은 왜 나타나는가. 정치인의 입장에서 국민 돈으로 인심 써서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그 다음은 내가 알 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 포퓰리즘을 막으려면 헛된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 감당 계획을 함께 내지 않으면 복지프로그램을 도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균형재정을 법으로 강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대책을 생각하기에 앞서 복지 포퓰리즘이 나타나는 ‘토양’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없는가. 선거가 있다고 다 복지 포퓰리즘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복지 포퓰리즘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복지 포퓰리즘은 권위주의 정치가 민주화하면서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다. 권위주의 정치 하에서도 부를 축적한 엘리트층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은 당연히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치가 민주화되어도 그들 엘리트층의 기득권을 깨기는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서민들의 유일한 무기는 선거권이다. 그런 서민들에게 정치인이 나서서 “너도 한 숟가락 얹어라”고 하는 것이 복지 포퓰리즘의 전형적 패턴이다.

지금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그리스의 재정위기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가 민주정치의 발상지이지만 그것은 먼 고대의 일이고, 그리스의 근대사는 굴곡의 연속이었다. 당장 1970년대만 해도 가혹한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당시 엘리트층의 부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해 유명해진 오나시스가 지하운동 단체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다.민주화 이후 집권한 사회당은 복지 지출을 늘렸고, 보수당도 그에 맞추어 경쟁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진짜 문제는 복지 자체가 아니다. 그리스의 복지 지출은 유럽 기준으로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엘리트층의 기득권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세수 부족으로 나타났다. 엘리트층의 탈세와 부패한 세정 때문에 세금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이다. 2009년에 재정적자의 3분의 2가 탈세 때문이라는 추계도 있다.

복지제도 자체도 엘리트층의 부패와 얽혀서 작동을 하지 못했다. 예컨대 공식적으로 의료와 교육은 무상이었지만,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서는 치료비의 45%를 의사와 간호사에게 뇌물로 주어야 했고,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유럽연합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했다.

그리스의 이런 사정은 복지 포퓰리즘이 나타난 다른 나라, 예컨대 남미 제국도 비슷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에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도 정도는 덜하지만 그런 조건이 있다. 한국도 기존의 많은 부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정경유착 관치금융 부동산투기 부당내부거래 변칙상속 전관예우 등으로 형성됐다. 그 후 자유화와 민주화에 따라 일부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갈 길이 먼 상태다. 현 정부 초기에는 개혁이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복지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행태를 합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타날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하는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사람도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구조부터 고치라고 하는 것이 맞다. 민주정치가 더 뿌리내리게 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이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이제 와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