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열 앓던 3살 아누손 "컵차이 코리아"…폐수술 받고 웃음 되찾아

개도국을 깨우는 ODA 전도사들 (2) 라오스 비엔티안의 '백의 천사들'

KOICA, 라오스 첫 아동병원 설립…의사 4명 간호사 4명 파견 봉사
"신뢰 간다" 소문에 하루 150명 찾아…현지의사들 대상 실습 교육하기도

< 컵차이 : 라오스어로 '고맙다'는 뜻>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사는 3살 남자아이 아누손에게 한국은 잊을 수 없는 나라다. 원인을 알 수 없이 높은 열에 시달리던 아누손에게 병원에서는 항생제만 줬다. 거듭되는 처방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더욱 악화되자 의사는 새로 생긴 아동병원에 가볼 것을 권했다. 한국의 무상원조 집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지원해 설립한 병원이었다. 아동병원의 한국인 협력의사는 가슴에 고름이 찬 농흉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아누손은 그날 바로 입원해 가슴에 관을 끼워넣는 흉막삽관술을 받았고 농흉은 제거됐다. 아누손은 수술 뒤 10일 동안 입원했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한국 봉사단원들이 직접 그렸다는 아기자기한 그림과 ‘금붕어’ ‘코끼리’ 등의 이름이 걸린 입원실. 지상 2층의 하얀 건물은 낮에는 유리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전깃불이 없어도 환했다. 지난 주말 찾은 비엔티안의 아동병원은 유치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라오스 최초의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외래진료를 마친 어린이들 역시 얼굴에 두려움보다는 놀이터를 찾은 듯한 즐거움이 배어 있었다. 아동병원은 라오스의 아동 보건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원된 사업이다. 라오스는 2005년 기준 1년에 0~1세 영아 1000명 가운데 75명, 5세 이하 아동 1000명 중 90명이 사망할 정도로 아동 사망률이 아세안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1997년에야 소아과 전문의 과정이 시작돼 현재 62명의 소아과 전문의가 배출됐다. 하지만 교육과정이 부실해 전문의이면서도 엑스레이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유리 KOICA 라오스사무소 부소장은 “지방 출신의 의사는 비엔티안으로 유학오는 데 따르는 재정 부담 때문에 전문의 과정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라오스는 2015년까지 영아 사망률을 1000명당 45명, 아동사망률을 1000명당 55명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로 세우고 이를 위해 KOICA에 아동병원 설립 지원을 요청했다. KOICA는 2009년부터 3년간 350만달러를 투자해 4686㎡ 규모의 70개 병상을 갖춘 아동병원을 지었다. 라오스의 ‘첫번째’ 아동병원임을 기념하기 위해 2011년 11월11일 오전 11시11분에 문을 열었다.

개원한 지 이제 석달. 병원은 비엔티안에서 어린이를 위한 대표 의료시설로 자리매김했다. 응급실 70여명, 외래환자 80여명 등 하루 평균 약 150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 열과 복통으로 입원 중인 3살 마니손 군의 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갔다가 의사가 여기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며 “병원이 깨끗하고 의사들도 친절하다”고 말했다.

아동병원에는 현재 흉부외과 1명, 소아과 1명, 내과 2명 등 총 4명의 한국인 협력의사와 간호사 4명이 파견돼 있다. 한국에서 지어주고 한국 의사들이 있다는 소식에 현지 주민들 사이에선 “아동병원은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나고 있다고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기존의 라오스 병원에 없던 수술실과 엑스레이, CT 촬영 설비가 마련되면서 중환자에 대한 진료도 가능해졌다. 아동병원 1층 진료실에서는 한국인 협력의사 정윤상 씨(34)가 외래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 그가 진료한 환자는 8살 소년 분종. 2주 전 아동병원으로 이송돼 온 분종은 패혈증으로 쇼크 상태에 빠졌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분종은 양쪽 폐에 물이 고이는 흉막삼출로 숨쉬기도 힘든 상태였다. 정씨의 집도로 분종은 관을 갈비뼈 사이로 삽입하는 흉막삽관술을 받았다. 아직까지 흉관을 집어넣는 시술을 두려워하는 현지 의사들이 많아 분종의 수술은 라오스 외과의사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됐다. 2주간 입원한 뒤 외래관찰을 받고 있는 분종은 쇼크에 빠졌던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라오스 현지 의사에 대한 교육도 아동병원의 중요한 역할이다. 아동병원에는 현지 의대생 15명이 실습을 받고 있다. 의료시설이 낙후하고 선진 의료기법을 경험하지 못한 라오스 의사들에게는 좋은 연수기회다. 아동병원의 세쓰 치타나반 부국장은 “아동병원은 수술실과 진료시설 등으로 완벽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지만 우리 의사들의 실력이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에서 온 의사들이 하나하나 가르쳐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협력의사들은 짬짬이 현지 대학생들을 위한 임상실습 수업을 진행한다. 정윤상 씨는 “아동병원에는 엑스레이, CT 등 시설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지만 정작 현지 의사들이 사진 판독을 하지 못해 시설을 활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5명씩 그룹을 지어 직접 엑스레이를 읽는 법, 대처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비엔티안(라오스)=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KOICAㆍ한경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