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제 유력인사 타령은 그만두자

국민이 정부 선택할 두번의 기회…화려한 경력보다 진정성 보아야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장 >
우리는 오는 4월과 12월 두 번 정부를 선택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새삼 말할 나위도 없지만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독재와 전제주의로부터 구별시켜 주는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 사실 민주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도대체 한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물론 국민 개개인이 정부를 선택한다고 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누구에게 정부를 맡길지를 결정하는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민주주의를 표방할 자격이 없다. 김정일의 후계자로 옹립된 김정은에 대한 북한 인민의 선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선택이 있었다 해도 또 사후적으로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추대 또는 선출의 외양을 갖춘다 해도 결국 대안 없는 강요된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국가보다는 전제군주국에 가깝고, 개혁·개방조차도 군주제 모델로 해결하려 한다고 보는 해석도 같은 맥락이다.아무튼 우리는 다르다. 개개인에게 정부, 정확히는 국가권력을 행사할 자를 선택할 권리와 기회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 선택권이 얼마나 주효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정치권이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하면서 진력이 난 사람들이 많고 안철수 신드롬처럼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던 데서 볼 수 있듯이 ‘진짜 국민이 정부를 선택한다’고 말하기 민망한 부분이 적지 않다.

공천이나 당내경선을 통해 미리 짜 놓은 메뉴 중 싫든 좋든 선택을 강요받은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돌연 상황이 급변하니까 부랴부랴 외부인사들을 불러 공천심사를 시키고 공천혁명이니 오픈프라이머리니 하며 법석을 떨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정치적 갈증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책임도 지지 않는 당외인사들이 물갈이를 운운하며 공천을 좌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당내 불만도 불만이지만 동원된 외부인사의 선정배경을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아예 기대를 접었다며 기권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투표 말고는 대안이 없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결국 투표로 정부 선택권을 제대로 행사해야만 주권이 국민에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를 어떻게 선택해야만 제대로 선택하는 것일까. 또 어떤 인물을 공천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진정성을 가진 인물인지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종종 능력과 경력을 내세워 마치 전리품 수집하듯 의기양양 선거에 나서는 인물에 현혹된다. 그 결과 그들의 개인적 출세의 발판이 되거나 영달 퍼레이드에 관중 노릇을 한 셈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번드르르한 재개발, 도시정비사업을 벌이며 정작 삶터에서 쫓겨나고 밀려나는 사람들의 처지는 보지 못하는 명망가들에게 한 눈 팔지는 않았던가. 물론 진정성을 가진 인물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 사고방식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화려 즐비한 경력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무슨 약속을 하는지도 보아야 한다. 표 얻는 데 혈안이 돼 섣부른 공약을 남발한다면 필경 헛공약이 될 공산이 크다.

길 내고 다리 놓는 식의 지역개발 공약이 아직도 먹힌다지만, 이제는 제발 힘깨나 쓰고 마당발로 예산 잘 따온다는 유력인사 타령은 그만두자.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유권자에 대한 약속을 하늘같이 여기는 사람을 찾아보자.

결국 뭐니 뭐니 해도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 헛손질이 될지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진정으로 정부를 선택한다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고민해서 투표하는 길밖에 없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