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실명 공개 '유탄' 맞은 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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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건설부동산부 기자 selenmoon@hankyung.com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소위원장인 K교수가 소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한 언론이 그가 개포지구 재건축에 대해 ‘소형 50% 확대’를 적극 요구했다고 실명으로 보도한 이후 주민 협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명 공개로 소위원장이 그만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포지구 재건축조합과 인근 중개업소, 재건축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는 지난 16일 강남구청 실무자가 작성했다는 일명 ‘K교수 발언 문건’이 공개되면서 오전부터 시끌벅적했다. ‘도시계획소위원회(개포저층단지) 개최 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은 앞서 9일 열린 소위에서 위원장인 K교수가 재건축안을 심의한 이후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을 50% 이상으로 늘리지 않으면 다른 문제점을 계속 제기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일 본지에도 이 문건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다.한 일간지가 이 내용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K교수를 실명으로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실명 보도 이후 K교수는 전화번호가 유출되는 등 ‘신상털이’를 당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K교수는 소위원장직을 내놓고 해외출장길에 올라 연락이 끊긴 상태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구단위계획 등 각종 개발계획을 세울 때 자문·심의하는 의결기관이다. 서울시 공무원, 시의원, 건축·도시개발 전문가 등 30명으로 구성되고 안건이 중요하면 소위를 따로 연다.
심의 결과가 해당지역 주민들의 재산권과 밀접한 관계를 갖다보니 위원들은 거센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K교수의 사퇴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소재 한 대학의 건축학과 교수는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다양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찬반 의견을 소신껏 내지 못한다면 위원회 존립 이유도 사라진다”고 말했다.서울시는 다음달 전국 최초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의 이름·소속·직업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도시건축공동위 도시재정비위 등도 마찬가지다. 공개적 운영으로 정책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제2, 제3의 K교수가 속출한다면 누가 서울시 행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지 의문이다. 실명 공개가 도시행정의 객관성을 높이는 묘책이 되려면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책임있는 실명보도 원칙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문혜정 건설부동산부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