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치권의 '속보이는' 꼼수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여야가 모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이었다. 의석 수를 300석으로 늘려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목표엔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밥그릇 챙기기’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무책임과 담합으로 점철된 ‘꼼수’ 그 자체였다.

국회가 오랜만에 정상적으로 열렸던 지난 27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전체회의에서 국회의원 의석 수를 현행 299석에서 300석으로 늘리는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개정법안은 게리맨더링 등으로 누더기가 되다시피했지만, 법사위원들은 그다지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의 제기도 전혀 없었다. 본회의는 성황이었다. 평소엔 해당 상임위원회나 본회의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의원들이 이날 본회의에 200여명 가까이 참석했다.

법사위는 오후 7시께 열기로 했던 전체회의를 돌연 취소했다. 취소 사유는 법안 심사 및 처리를 위한 의결정족수 미달이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 상당수는 이미 선약과 지역구 일정을 핑계로 자리를 뜬 상태였다. 한 의원은 “본회의가 끝난 뒤 저녁식사를 하고 왔지만 다들 ‘파장’ 분위기였다”고 해명했다. 법사위 여야 간사는 전체회의를 산회하기로 일찌감치 합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를 달성한 이상, 굳이 더 일할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의석 수를 늘릴 땐 민첩하게 움직이던 의원들이 법사위 회의를 앞두고 고의적인 ‘태업’을 한 셈이다. 20여개 일반약품의 편의점 판매 허용을 골자로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비롯해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민생법안 수십개가 처리되지 못했다. 한마디로 민생은 외면한 채 기득권 보장을 위해서라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이명박 대통령까지 28일 “국회가 의석 수를 이렇게 늘려가면 큰 일 아니냐”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제발 저린 여야는 이번 결정이 한시적이라고 해명했다. 총선이 끝난 뒤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상시 운영키로 여야가 합의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법안에선 준(準)입법권을 갖는 획정위 상시운영 조항은 뺐다. 끝까지 꼼수행태를 보인 것이다. 18대 국회는 ‘해머’로 시작해 ‘최루탄’과 ‘돈봉투’를 거쳐 결국 ‘의석 300석 돌파’로 막을 내렸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