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우정이 뭐길래…이토록 뜨겁게 부대끼나

정소성 씨 장편 '설향' 펴내
“소설의 본령은 역시 사랑입니다. 시대를 초월해 몇 백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작품은 결국 사랑 이야기죠. 젊은이에게 중요한 사랑,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우정을 탐구해본 소설입니다.”

소설가 정소성 씨(68·사진·단국대 명예교수)가 7년 만에 새 장편 《설향(雪鄕)》(시와에세이)을 펴냈다. 197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1985년 중편 ‘아테네 가는 배’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정씨는 그동안 분단문제 등 선이 굵은 작품을 써왔다. “사랑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은 《여자의 성》이후 22년 만이에요. 《대동여지도》《태양인》《두 아내》《바람의 여인》 등 주로 역사와 전쟁을 소재로 썼죠. 역사나 사회상을 담아야 한다는 작가의 책무 같은 것이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소설의 본류인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더군요.”

《설향》은 미술대학 졸업반인 현우와 태현, 혜란과 미라의 사랑과 우정, 예술에 대한 열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들의 엇갈린 사랑과 헤어짐, 재회 등 길고 긴 여정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요즘 감각에 맞게 쓰는 게 쉽지 않았을 법하다.

그는 “드라마처럼 세부적인 것을 다루기는 어려웠지만 결국 사랑의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남녀가 상대를 뼈저리게 그리워하는 정신작용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른세 살인 쌍둥이 아들의 경험담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요. 사랑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립고, 갖고 싶은 감정. 그게 사랑이 아닐까요.”소설에서 파격이나 일탈, 배반과 갈등 같은 극적 요소는 약하다. 차분하게 전개돼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지만 삶에 대한 진정성이 가득 묻어난다. 장편은 7년 만이지만 그사이 여섯 편의 중편과 열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2009년 단국대에서 퇴직할 무렵 뇌경색으로 병고를 치르면서도 집필 의욕을 불태웠다.

그는 “늙음과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싸움에서 작가로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은 글을 쓰고 발표하는 것뿐이었다”며 “앞으로도 사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