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형, 로제타석 비문 내가 해독했어 ! "

문자를 향한 열정
레슬리 앳킨스 외 지음 / 배철현 옮김 / 민음사 / 400쪽 / 2만5000원

유배·반역죄 기소 '역경' 뚫고 이집트 성각문자 세계 첫 해독
'언어의 천재' 샹폴리옹 일대기
1822년 9월14일 파리 마자랭 거리의 다락방. 이집트 성각문자 해독에 열중하던 프랑스 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태양 모양의 원 그림이 고대 이집트어인 콥트어에서 태양신을 뜻하는 ‘라(Ra)’임을 알아냈다. 앞서 연구한 단어 ‘s’와 연결해 보니 파라오들이 사용한 이름인 ‘람세스’가 아닌가. 흥분과 기쁨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나머지 그림에 적용하니 또 다른 파라오의 이름인 ‘투트모세’였다. 그는 집을 뛰쳐나와 200m 거리를 단숨에 달려 형 자크조제프가 있는 프랑스학술원으로 들어섰다. 그는 연구노트를 책상에 던지며 “내가 발견했어!”라고 외치고는 기절해 버렸다. 닷새 만에 의식을 회복한 그는 이튿날 연구를 재개해 9월27일 전문가들이 참석한 학회 모임에서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고대 이집트문명의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이다.

《문자를 향한 열정》(레슬리 앳킨스 외 지음, 민음사)은 세계 최초로 로제타석을 해독한 고대 이집트학의 선구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영국 런던고미술협회 전문위원이자 부부 고고학자인 저자들은 프랑스혁명 이후 격동기를 살면서 문자 탐구에 일생을 바친 샹폴리옹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책은 나폴레옹이 1798년 5월19일 단행한 이집트 원정을 추적하는 것으로 문자 탐구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폴레옹의 원정은 군사적으로는 실패했지만 학문적으로는 성공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유물과 문서, 각종 자료들이 전 유럽에 넘쳐났고, 많은 학자들이 비밀을 풀기 위해 앞다퉈 나섰다.

1790년 프랑스 시골 마을 피자크에서 태어난 샹폴리옹은 언어 신동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읽기와 쓰기를 터득했다. 열두 살 되던 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혔고, 성서를 원전으로 읽기 위해 히브리어 아랍어 시리아어 아람어를 공부했다. 열여섯 살에는 12개 언어를 마스터할 정도로 언어 천재였다. 그르노블대 역사학과 교수에 임용됐을 때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샹폴리옹의 운명은 열한 살 때 학자 조제프 푸리에와 만나면서 결정된다. 돌과 파피루스 조각에 새겨진 문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운명을 성각문자 판독에 걸기로 마음먹는다. 샹폴리옹이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나폴레옹의 등극과 폐위로 혼란에 빠진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친나폴레옹파로 분류돼 쫓기고, 유배당하고, 반역죄로 기소되기도 했다. 가난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고,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하지만 문자를 향한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영국 학자 토머스 영을 비롯한 경쟁자들이 자신보다 앞서 연구 성과를 내놓는 것에 불안해했다. 성각문자 해독의 단초를 제공한 유물은 로제타석 비문. 로제타석에는 똑같은 내용이 그리스어, 성각문자, 민중문자로 각각 쓰여 있었다. 학자들은 그리스어를 중심으로 성각문자 해독에 나섰지만 성각문자가 다른 고대문자와 같이 표의문자라는 생각에 갇혀 수많은 오역을 쏟아냈다. 하지만 샹폴리옹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로제타석과 오벨리스크 등의 원문을 집요하게 탐구해 성각문자가 표음문자와 표의문자가 혼합된 체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신이시여, 2년만 더, 왜 안 되는 것입니까!” “너무 일러, 여기 이렇게 많은 것들이 있는데.” 42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샹폴리옹은 눈을 감기 전 이렇게 탄식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이집트 고대문명에 대한 연구는 한층 더 진보했을지 모른다. 번역자인 고대 근동어 전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샹폴리옹은 최고의 라이벌 영을 물리치고 거의 1400년 동안 사라져 있었던 언어인 이집트 성각문자를 판독했다”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집트에 관한 모든 것은 샹폴리옹이 일생 동안 노력한 결과로 이뤄진 것들”이라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