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야생에 버려진 고아…소설로 위무했죠"

장편 '너의 목소리가 들려' 펴낸 김영하 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아의 그림자를 뒤에 달고 산다고 생각해요. 이전 세대의 경험과 규칙이 시시각각 무화되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고아입니다.”

미국 뉴욕에 체류 중인 소설가 김영하 씨(44·사진)가 신작 《너의 목소리가 들려》(문학동네)를 내놓았다. 《퀴즈쇼》 이후 5년 만의 장편이다. 이메일로 만난 김씨는 “취재와 자료조사 등은 집필 초반부에 다 마쳤지만 5년을 붙들며 거듭해 고치고 새로 썼다”고 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야만의 세계를 문학의 언어로 옮기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검은 꽃》《퀴즈쇼》로 이어지는 ‘고아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주인공은 고아 출신 폭주족 리더인 제이, 그와 운명처럼 묶인 친구 동규다.

제이는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한 10대 소녀의 아이로 태어난다. 터미널 인근 화훼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돼지엄마 손에 길러지다가 보육원으로 옮겨가고, 야생의 길에서 노숙 생활을 하며 자신처럼 세상으로부터 발길질 당한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동규는 한때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앓았다. 입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한 채 종유석처럼 굳어가는 그의 말을 읽고, 사람들에게 통역해주는 제이와 샴쌍둥이처럼 단단히 결속돼 있다.소설은 제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동규의 기억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이에게 빠져드는 목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제이를 추적하는 박승태 경위, 제이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자신의 유방암 사실을 고백하는 Y 등의 기억을 통해 제이의 삶은 여러 겹으로 재생된다.

제이는 폭주족을 규합해 광복절 대폭주를 감행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울 한복판을 질주하고, 제이는 경찰의 단속 대열 속으로 돌진하면서 신화처럼 사라진다.

작가는 제이와 동규 같은 ‘사회적 소음’에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버려진 자들에 대한 위무로 다가온다.1995년 등단해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상 등 주요 문학상을 받은 김씨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는 “소설은 인류가 고안한 기억과 공감의 양식”이라며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살피고 타인과의 밀도 높은 공감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소설을 통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 믿었던 존재들과 비로소 대화를 시작하고, 그 대화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고 덧붙였다.

2010년 9월부터 뉴욕에 머문 그는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독서와 휴식을 하는 단순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연말까지 뉴욕에 있을 예정이며, 곧 새 장편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