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세상 꿈꾼 시인 43명의 오마주…이재복 씨 평론집 '우리 시대…'

‘?누가 내게 가르쳐주었니/ ?이렇게 재빠르게 남의 몸에 낙인 찍는 법을/ ?벙어리처럼 손가락으로 말하는 법을/ ?네 손가락 하나하나가 바늘이 되는 법을/ ?왜 네가 새긴 무늬들은 내 심장 박동마저 방해하니’(김혜순의 ‘문신’ 중)

김혜순 시인의 시 ‘문신(文身)’은 22개 시행이 모두 물음표로 시작된다. 시행의 끝이 아닌 맨 앞에, 그것도 문장의 속성에 관계없이 물음표를 찍어놨다.문학평론가 이재복 한양대 교수(사진)는 ‘몸 혹은 존재의 견고함’이라는 비평에서 “이 물음표는 일종의 ‘시적 허용’으로 몸화에 대한 호기심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준다”고 했다. 몸 밖의 세계를 몸 안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존재를 구성하는 ‘몸화’의 과정이 말이나 언어에 앞서 느낌으로 먼저 체험된다는 것. 몸화의 과정이 말이나 언어로는 쉽사리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의 휴지를 거친 것으로 해석했다.

이씨는 ‘현대시학’ 1998년 11월호에 실린 비평을 통해 몸의 존재성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탐구를 읽어냈다. 그의 첫 시 비평이었다.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작가 펴냄)는 왕성한 현장비평을 하고 있는 이씨의 시 비평집이다. 정진규 김지하 이성복 김혜순 송찬호 문태준 황병승 김언 등 시인 43명의 작품을 ‘그늘과 감성’ ‘몸과 파토스’ ‘언어와 감각’ ‘일상과 서정’ 등의 주제로 나눠 읽어낸다. ‘우리 시대의 감성과 신서정’에서는 동시대 한국현대문학의 감성과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예컨대 허만하의 ‘제주도’에서는 절대 순수와 고독의 상징인 나목에 자신의 내면과 꿈을 투사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정병근의 ‘유리의 기술(技術)’에서는 상호 투사의 접점인 유리창을 통과한 햇빛이 삶에서 죽음으로 바뀌는 과정의 절묘함을 포착한다.

이씨는 30·40대에 가족보다도 많은 시간을 인사동, 혜화동, 신촌 등에서 시인들과 함께 보냈다. 시인들은 때로 가망 없는 희망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세상과의 불통을 즐기는 은둔주의자, 온갖 자학과 피학, 자기연민과 자기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에고이스트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느꼈던 힘은 오래전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었을 때의 이상한 전율 같은 것이었다고 말한다.그는 책머리에서 “43인의 시인과 이들의 시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따뜻한 위안과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많은 기회와 내 삶의 먼 곳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고 싶은 진정한 용기와 열정을 배웠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