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실종사건 연극으로 풀어냈죠"

이윤택의 '궁리' 23일 무대에
“장영실은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존경받는 역사적 위인인데도 인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전무합니다. 장영실의 ‘역사적 실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현재 시점에서 장영실의 삶을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 씨(60)가 새 연극 ‘궁리(窮理)’(사진)로 돌아왔다. ‘시골선비 조남영’ 이후 10년 만에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 세종대왕과 그가 총애하던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다.장영실은 1442년(세종 24년) 임금이 타고 갈 안여(수레)를 잘못 만들어 태형 80대를 맞고 쫓겨났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당대 최고 과학자이자 대호군이라는 종3품 벼슬의 고급 관리가 왜 수레를 만들게 됐을까. 그 수레는 왜 부서졌으며, 수레 제작에 관여한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고 풀려났는데 장영실은 왜 태형을 맞고 쫓겨났을까.

‘궁리’는 의문투성이인 장영실 실종 사건을 당시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 속에서 파악한다. 장영실이 중국을 등에 업은 사대주의자들과 민중을 포함한 세종 중심의 자주세력 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희생됐다는 것. 세종과 장영실이라는 인간을 통해 지금의 정치적, 국제적 상황을 투영시킨다.

이씨는 2010년 부산에서 열린 ‘궁리, 장영실과 과학의 나라’ 전시회를 찾았다가 장영실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8일 만에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소설은 부산의 국제신문에 연재될 예정이다. 그는 “장영실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그가 변방 출신이고, 천민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장영실은 고려 말 원나라 이주민 출신의 남자와 관노비 사이에서 태어났고 서울 도성 사람이 아닌 부산 지역민이란 점에서 철저한 변방인이었다. 변방인이었기에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장영실은 서울 중심, 학벌 중심의 현대사회 불평등 구조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씨는 “장영실이라는 이름 석 자는 다들 알고 있고 그와 함께했던 인물의 역사적 기록과 묘비는 남아 있지만,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며 “우리가 아는 역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는 의미에서 역사극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궁리’는 국립극단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고양문화재단이 공동 제작했다. 곽은태 이원희 이종구 조정근 박우식 전형재 심완준 등 연기파 배우 26명이 출연한다. ‘문화게릴라’라는 별명이 붙은 이씨 특유의 거침없는 대사와 유려한 무대장치 등 볼거리가 많다.오는 23~25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 후 4월24일부터 5월13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어 안산문화예술의전당(5월18~20일), 고양문화재단 새라새극장(5월24~27일, 5월31일~6월3일)에서 관객을 만난다. (02)3279-2233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