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Hi! CEO] 말이 문제다

외부와 만날 때는 침묵으로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
다언삭궁(多言數窮).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해진다는 뜻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목인데 수천년 전에도 말로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평소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공동 사업이나 협상 등에서는 정말로 유용한 격언이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아무래도 나중에 시비에 걸릴 것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가 어려워진다.내부 행사면 몰라도 외부와의 만남에서 솔로 플레이는 곤란하다. 사장이 혼자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하고 결국 카드를 다 드러내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가능성은 우리의 회의 문화를 보면 쉽게 짐작된다. 회장이, 사장이, 임원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훈화하는 분위기에서는 아랫사람들은 의견을 내기보다는 적는 습관만 들일 수밖에 없다.

평소 이런 습관을 가진 경영자는 외부와 만날 때도 그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우리 쪽에서 ‘대장’이 말하고 있으면 아무도 말을 거들지 않는다. 본인만 얘기하다 보면 결국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협상이든 미팅이든 결정권자 혼자 모든 것을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혀 다른 개성의 굿가이(good guy), 배드가이(bad guy)를 같이 데리고 가는 것이다. 배드가이는 글자 그대로 악역을 맡은 직원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하나씩 토를 달며 공격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굿가이는 혹시 모를 ‘파국’에 대비해 상대방을 달래는 사람이다. 사장은 굿가이와 배드가이가 쳐놓은 양극단의 그물 속에서 중용을 찾으면 된다. 이왕이면 말도 짧게 하면 좋다. 예를 들면 ‘충분히 얘기 나눴으니 다음 미팅 때 우리 결론을 주겠다’ 정도면 충분하다.

사장은 사내에서는 직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반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좋다. 그러나 외부 파트너와의 미팅은 정반대다. 차라리 바보처럼 침묵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