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팝의 영원한 디바 버킨 "60년대 파리 함께 걸으실래요"

22일 광장동 악스홀서 내한공연…사별한 남편 갱스부르의 곡 선사
“마치 1960년대 파리 거리를 갱스부르와 함께 걷는 듯한 공연을 만들 거예요. ‘멜로디’ ‘디두다’ ‘코믹 스트립’ 등 많은 곡을 부를 텐데 특히 갱스부르의 오래된 노래들을 선물할 겁니다.”

프렌치 팝의 대명사, 1년을 더 기다려야 살 수 있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주인공, 1960~1970년대 프랑스 패션계를 장악한 제인 버킨(66·사진). 그가 오는 22일 8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고인이 되어버린 프랑스의 천재 예술가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다.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버킨은 영화배우 겸 모델, 가수로 활약했다. 오랜 연인이자 서로의 뮤즈였던 갱스부르와는 1968년 영화 ‘슬로건’의 음악 작업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올해는 갱스브루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둘이 함께한 최고의 앨범 ‘이스트와르 드 멜로디 넬슨’의 발매 40주년이 되는 해다. “갱스부르는 위트있고 별나고 물고기처럼 술을 마시면서도 진심이 담겨 있는 예술가, 최고의 시인이자 세상을 앞서간 완벽한 오리지널”이라고 회상하는 버킨을 이메일로 만났다.

버킨은 이번 공연에서 갱스부르와 결별한 후에 나온 앨범 ‘베이비 얼론 인 바빌론(Baby Alone in Babylon)’에 수록된 곡들을 다수 부를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이 앨범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인 작품, 헤어짐에 관한 아름다운 곡이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레게, 펑크, 발라드, 록, 영화 음악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던 연인과의 삶에 대해 “갱스부르는 죽기 전까지 내게 기적과도 같은 곡들을 만들어줬고, 나는 그가 만든 최고의 작품들을 노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둘은 금기에 대항한 노래 ‘사랑해…이젠 아니야(Je T’aime…Moi Non Plus)’로도 유명하다. 가사라기보다 신음소리에 가까운 이 성애가(性愛歌)는 발표되자마자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는 “갱스부르와 딱 한 번 무대에서 불러봤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노래로 날 기억한다”고 말했다.이번 투어는 그가 대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가 우연히 작은 공연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함께했던 피아니스트 노부, 드러머 톰 등 일본인 주축의 밴드와 함께 떠난 미국 투어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월드 투어로 이어지게 됐다.

그가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태국 버마 난민을 돕기 위해 승려들과 함께 먼 길을 걷기도 했다. 아이티 지진 땐 이동식 천막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을 돌봤고, 보스니아 르완다 팔레스타인 등 분쟁 지역을 찾아 희망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호기심이 세상을 구한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인의 로맨틱한 감성과 낙천적인 성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만들고 서로 보살피거나 걱정하게 만들죠. ‘배려’는 나비효과처럼 매일 세상을 바꿔간다고 믿어요. 아웅산 수치 여사 같은 인물이 좀 더 나은 현재를 만들죠.”그는 예술적 영감을 주는 대상으로 ‘사람들의 열정’을 꼽았다. 깁스를 한 채 월드 투어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 딸 역시 그의 열정을 빼닮았다. 갱스부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샬롯 갱스부르는 여배우 겸 가수로 버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고 산다”는 그의 말처럼 올해에도 새로운 계획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 새 앨범 녹음을 마치고 와이드의 희곡 연기도 할 예정이에요. 아비뇽 연극제에서 만난 이탈리아 연출가의 작품에서 인류학자 역할을 맡을 거고요. 두 번째 영화 연출도 앞두고 있어요. 여전히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사형수들을 위해 싸울 거고요. 딸 샬롯과 듀엣 공연도 준비하고 있죠.”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 공연은 22일 서울 광장동 악스홀에서 열린다. (02)6339-1232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