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구럼비 바위로 이어도 지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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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비무장은 심각한 안보공백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발파를 저지하려는 시위대의 폭력적인 해군기지 방해는 여전하다. 그곳에 산다는 맹꽁이와 붉은발말똥게는 경부 고속철 공사를 6개월이나 중단시켰던 ‘천성산 도롱뇽’과 같다. 그때 도롱뇽은 공익과 충돌한 환경의 상징이었지만, 구럼비 바위는 환경과 평화로 포장된 반미(反美)·반이명박의 깃발이다.
국민경제 생명줄 무방비인데 중국은 노골적인 영토침탈 야욕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강정마을에 달려가 해군기지가 ‘재앙’이라고 목청 높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지난 정권 총리 시절 주민들에게 기지의 불가피성을 앞장서 호소했었다. 집권한 뒤 책임을 묻겠다며 현장 지휘관을 윽박지른 정동영 최고위원은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이었고 5년 전 대통령 후보였다. 그들이 내 나라 내 땅 내 바다를 지켜야 하는 안보의 전제마저 부정한다. 그러니 중국이 제주 남쪽 우리 영토 이어도까지 집어삼키겠다고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구럼비 바위의 자연사적·환경적 의미가 크다 한들 안보의 절대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예전에 별로 들어본 바 없는 바위가 언제부터 그렇게 신성(神聖)한 곳이됐는지도 궁금하다. 화산섬 용암지형의 하나로 장구한 세월 그 자리에 있었을 구럼비 바위는 해군기지 후보지 확정 다음 해인 2008년부터 언론에 등장한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한 존재였거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구럼비 바위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또 그 바위가 없었더라도 다른 무엇인가가 상징이 됐을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 또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 미래와 안보를 위한 결단이었다. 그 정신은 버린 채 껍데기만 둘러 쓴 ‘말바꾸기의 달인’들은 또다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고 민주적 절차를 문제 삼는다. 정권을 쥐었던 여당에서 야당이 된 그들의 처지 말고 뭐가 달라졌다는 건지, 자신들이 법적·행정적 절차를 모두 밟아 결정한 일에 무슨 하자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지금 정권의 모든 것을 무조건 갈아엎자는 핑계일 뿐이다.
국토 남단에서 대양(大洋)으로 뻗어나가는 거점인 제주도에 여태 해군기지 하나 없었던 것이야말로 역대 정권의 중대한 직무유기다. 심각한 안보의 공백을 방치한 채 지금껏 어떻게 우리 바다를 지켜왔는지 의문이다. 제주 남쪽 항로는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석유와 원자재 곡물 거의 전량이 들어오는 길목이고 수출상품 대부분이 지나는 국민경제의 생명줄이다. 중국과 일본의 해군 함정들이 수시로 넘나드는 그곳에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눈 뜬 장님이다.결국 중국이 노골적인 영토 야욕을 드러냈다. 우리 이어도에 그들 멋대로 쑤옌자오(蘇巖礁)라는 이름을 붙이더니 아예 관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영토 침탈의 타깃으로 삼은 분쟁지역화의 의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옥돔밭’으로도 불리는, 대대로 물려받은 우리의 이어도 황금어장에서는 지금도 중국어선들이 활개치며 싹쓸이 불법조업도 모자라 낫을 들고 죽창을 휘둘러 우리 해경을 위협하기 일쑤다.
이곳에서 분쟁이라도 발생하면 부산 해군 작전사령부에서 함정이 출동해 이어도에 닿는 데 23시간이 걸린다. 중국은 닝보기지에서 18시간, 일본 사세보기지에선 15시간이다. 우리 영토 이어도를 스스로 지킬 힘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라면 이어도까지 8시간에 달려갈 수 있다.
아무리 오늘의 세태가 반미를 내세워야 ‘개념인(人)’이고 안보를 망각한 사회라지만 해군기지가 미국의 해양지배를 돕는 ‘해적기지’라는 말에 조금의 분별이라곤 없다. 지금 이어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진짜 해적질에는 고개를 돌리는 이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거저 얻어졌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미숙아일 뿐이다. 이어도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수 있을 때 우리 영토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은 구럼비 바위와 비무장(非武裝)이 아니라 남쪽 바다에서 충돌하고 있는 중국 일본의 해양 제국주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역사의 가르침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제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