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高유가 적응력 낮춰 오히려 '毒'…정유사ㆍ주유소 배만 불릴 것

반대

에너지 효율 제고에 역행…휘발유 소비부터 줄여야
세금·공급가 인하로 내성…가격 올라도 소비는 증가
정유 독과점 구조 개선을
휘발유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식되던 ℓ당 2000원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유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유가안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유류세 인하가 논란이 돼 왔다.

휘발유 가격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2월 말 기준 약 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은 아니다. 휘발유 세금은 왜 이렇게 높을까. 환경오염을 발생시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교통혼잡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교정하고 휘발유 소비가 사회적인 최적 수준에서 이뤄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세금을 높게 부과하고 있다. 휘발유 세금인하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환경오염이나 교통혼잡이 개선되고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데도 소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도 유류세 인하는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지 않는다. 유류세 인하는 단기적으로는 고유가 문제를 일시 완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유가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달콤한 독이 될 것이다. 휘발유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단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휘발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중동에 대한 원유수입 의존도가 높다. 원유가격은 중동정세 불안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불안정해질 수 있다. 현재의 휘발유 가격이 높다고는 하지만 휘발유 가격은 향후에도 언제든지 지금보다 높게 올라갈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휘발유 소비를 절약하는 에코드라이빙과 대중교통 이용을 생활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환경친화적인 고연비 차량을 운행하는 소비패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는 빠르게 에너지 소비효율이 높은 시장구조로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형차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도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달러 오르면 고연비 상위 25% 차량의 시장점유율이 21.1% 증가한다. 반면 저연비 하위 25% 차량의 시장점유율은 27.1% 하락한다. 시장구조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휘발유 소비량과 가격의 변화 추이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9년 이후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해왔다. 가격의 신호기능이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주요 원인은 2008년 세금인하와 2011년 정유사의 한시적 공급가격 인하 등으로 소비자들이 휘발유가격 상승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시기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제어해 소비자가 가격신호에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서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수송부문이 약 21.55%를 차지한다. 온실가스 배출증가량은 2020년까지 약 23.9% 늘어 가장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선언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송부문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중장기적으로도 휘발유를 감소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유례없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소비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시점에서 유류세 인하가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유류세 인하를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혜택이 정유사와 주유소에 상당부분 돌아가 소비자가 피부로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데 있다. 세수부족분은 다시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한시적으로 정부가 유류세를 10% 인하한 효과가 소비자에게만 간 것이 아니라, 정유사와 주유소에도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유사의 한시적 공급가격 인하는 근본적으로 유류세 인하와 다르다. 그러나 공급가격이 인하된다는 측면에서는 유류세 인하 효과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필자가 분석해보면 해당기간 정유사의 공급가격은 100원보다 적은 71.3원(표준오차 2.77원) 하락했다. 반면 주유소의 마진은 다른 기간에 비해 오히려 11.6원(표준오차 3.86원)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정유사의 공급가격 인하 시작일과 종료일 전후로 정유사와 주유소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인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것만 봐도 정부에서 유류세 인하를 할 경우 상당 부분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마진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휘발유 가격과 소비량이 증가하는 패턴에서 유류세 인하로 인해 가장 이익을 보는 집단은 바로 정유사와 주유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류세 인하는 정유사와 주유소에서 가장 원하는 카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정부는 유류세 인하 외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정부는 우선 고유가의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차량의 소형화와 대체에너지 차량에 지원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고유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소비패턴과 에너지 소비효율이 높은 산업구조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또 정부는 휘발유 시장 구조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휘발유 시장은 4개 정유사의 독과점구조다. 정유사에서 주유소를 소유해 가격을 통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산업구조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형태의 시장구조에서는 정유사의 시장지배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정책효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휘발유 시장의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고 주유소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계형 소비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논의를 종합하면 현재의 고유가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휘발유 소비 수준은 오히려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 관찰된다. 이러한 시점에 올바른 정부의 정책은 보다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견실한 소비구조와 에너지 소비효율이 높은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서민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논의되는 유류세 인하는 오히려 서민에게 달콤한 독이 될 것이다. 김대욱 숭실대 교수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데이비스) 경제학 박사 △공정거래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