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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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세상을 몰랐기에/때묻지 않은 청순한 얼굴 드러내 보임이요/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세상 절망했기 때문이요/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김상현 ‘개화의 의미’)
목련이 활짝 핀 4월의 한복판이다. 봄꽃 중 가장 크고 순백인지라, 목련만한 시재(詩材)도 없나 보다. 시인들은 목련을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제해만), “갑자기 바람난 4월 봄비에 후두둑 날아오른 하얀 새떼의 비상”(김지나), “어두움을 밀어내려고 전생애로 쓰는 유서”(박주택) 같다고 했다.목련이 핀 모습을 두고 “흰 붕대를 풀고 있다”(손동연),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문태준), “내 어릴 적 어머니 분냄새가 난다”(홍수희)거나, “빤스만 주렁주렁 널어놓고 흔적도 없네”(정병근)라는 시인도 있다. “아픈 가슴 빈 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는 양희은의 ‘하얀 목련’은 불후의 명곡이 됐다.
목련(木蓮)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유래했다. 나무에 핀 연꽃이란 의미다. 사찰의 문살 문양에 6장 꽃잎도 목련을 형상화한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은 중국말로 목련이다. 꽃봉우리는 약간 매운 맛이 나, 한방에서는 신이화(辛夷花)라고 부른다.
목련은 늘 북쪽을 향해 피어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한다.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하기에 충절을 상징했다. 이는 햇볕을 잘 받는 남쪽 화피편(花被片)이 북쪽 화피편보다 빨리 자라, 꽃이 북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흔히 보는 목련은 유감스럽게도 국내 원산인 ‘Magnolia kobus’(목련)가 아닌 중국 원산의 ‘Magnolia denudata’(백목련)이다. 목련은 꽃잎 안쪽이 붉은색인데, 백목련은 모두 흰색이고 화피편이 9장이다.
같은 꽃을 봐도 동서양이 천양지차다. 서양에서는 목련을 주로 팝콘에 비유한다. 요즘 젊은세대는 “팝콘처럼 피었다 바나나 껍질처럼 스러진다”는 어느 여류작가의 비유를 훨씬 더 공감한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던 박목월 시인의 세대에 견줘보면, 세월따라 사람의 감성도 이렇게 달라지나 싶다.
봄꽃의 개화시기는 보통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순이다. 그런데 올해는 산수유부터 벚꽃까지 기다린 듯 한꺼번에 다 피어버렸다. 늦은 꽃샘추위와 윤삼월 탓에 꽃들도 개화 시기를 헷갈린 모양이다. 이 골목엔 벌써 벚꽃이 잎을 틔우는데, 저 골목의 벚꽃은 아직 몽우리가 덜 여물어 얼굴 빨개진 소녀 같다. 지난 일요일(15일) 여의도 봄꽃축제에 55만명이나 몰렸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엔 꽃구경 한번 가야겠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