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뿔테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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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눈 좋은 사람은 모른다. 안경잡이의 고충을. 라면이나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면 안경에 서리는 김 때문에 앞이 안 보이고, 잘못 넘어졌다간 미간 등 눈 주위가 찢어지거나 푹 파인다. 근시의 경우 실내에서 안경을 벗다보면 어디다 뒀는지 몰라 노상 헤맨다.
콘택트 렌즈라고 나을 것 없다. 하드와 소프트 렌즈 할 것 없이 끼고 빼느라 고생이고, 늘 깨끗이 닦아야 하고,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눈이 뻐근해진다.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라식이나 라섹 수술을 받는 건 이런 불편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다. 안경을 벗으면 크고 또렷한 눈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걸까. 라식(라섹) 수술 전문 안과엔 대부분 쌍꺼풀 전후 사진이 걸려 있다. 라식 후 쌍꺼풀 수술을 하도록 은근슬쩍 부추기는 셈. 고도 근시로 두꺼운 안경을 썼던 사람이 안경을 벗고 눈 모양을 바꾸면 얼굴이 달라지는 것도 틀림없다.
이쯤 되면 공공의 적 같은 안경이지만 실제론 반대의 경우도 수두룩하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상징 중 하나요, 미국 드라마 ‘과학수사대(CSI) 마이애미’의 호레이쇼 케인 반장이 즐겨 쓰는 선글라스는 물론 일반 안경도 때론 사람의 분위기를 확 바꾼다. 눈꼬리가 올라간 탓에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부드럽게 해주고, 두루뭉수리한 얼굴을 또렷한 느낌으로 변화시킨다.
인터넷에 올라온 ‘안경을 써야 하는 이유’란 그림을 보면 안경은 트럭 운전사를 대학교수로, 야한 의상을 입은 여성을 쉬운 여자에서 어려운 여자로, 범죄자는 패션디자이너나 예술가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다. 시력교정용에서 이미지 변신용으로 달라졌다는 얘기다. 유행 또한 옷이나 액세서리 못지 않다. 한동안 작디 작은 게 유행하더니 최근 다시 커졌고, ‘최동원 안경’으로 유명하던 금테 안경 대신 뿔테 안경이 인기다. 소재와 디자인에 따라 느낌도 다를 터. 요즘 유행인 동그랗고 두꺼운 ‘김구 안경’은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느낌을 주고, 금속 소재는 이성적이고 섬세해 보인다고 한다. 뿔테 안경이 대세라더니 미국도 그런가. 흑인 강력범들이 법정에 나올 때 커다란 검정 뿔테 안경을 쓰는 일이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지적이고 정직한 느낌을 줘 배심원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는 것. 단정한 넥타이와 헤어스타일, 마른 몸매 등 순진하고 약해 보이는 외모 중심의 ‘법정 패션’에 뿔테 안경이 추가됐다는 얘기다.
이미지 시대다. 취업 면접에서도 좋은 인상이 우선시된다는 마당이다. 필요하다면 시력에 상관없이 얼굴형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안경도 챙겨볼 일이다. 나이 들었다고 예외일 리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