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도시 美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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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기회가 춤추는 곳, 都市
고밀도 분업화가 도시의 본질
朴시장은 도시를 가볍게 보지 마라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뒷골목에는 매춘과 마약, 폭력이 난무한다. 교통은 지옥이다. 허영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마천루는 위험스럽고 직선들은 반미학적이다. 도시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몰려 살아야 하는지를 개탄한다. 도시를 미워하는 사람은 문명도 증오한다.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들은 원시적 삶을 사랑하면서 산업화 이후의 분열적 삶을 소위 전통의 통합적 삶으로 되돌리려 애쓴다. 당연히 시장경제 체제를 싫어한다. 그래서 서울은 분할하거나 폐기처분해야 할 악의 할거지에 불과하다. 도시를 악의 소굴이라고 묘사한 사람은 루소다. 그는 문명을 증오했고 그의 제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저주했다.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에도 주목한다. 북한산을 끼고 한강이 굽이치는 서울은 더욱 그렇다. 도심을 걷는 연인들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고 경쟁하는 식당들은 네온사인을 반짝이며 손님을 맞는다. 출근길의 번잡함도 활기찬 삶의 현장이다. 직장 동료와의 도타운 점심도 그렇다. 위성도시인 일산으로 뻗은 자유로는 비록 차들로 붐비지만 한강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관조하며 차를 몰 수 있어 정신을 살찌운다. 주황색 가로등이 차례로 불을 밝히면 동작대교를 건너는 도시인의 감성은 더욱 예리해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자에 속한다. 고층 건물은 아예 알레르기다. 압구정 고층 아파트는 그래서 부정된다. 그러나 실은 고밀도야말로 도시의 상징이다. 높이 솟은 곳이라야 인간이 모여들고 지식과 아이디어가 그만큼 쌓여간다. 박 시장은 이를 부정한다. 어제 한경이 보도한 ‘서울시 균형 전략’은 더욱 그렇다. 강남 3구에 있는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 취득세를 50% 감면하고 5년간 재산세의 50%를 깎아주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골자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지역균형 논리의 축소판이다. 서울 인구가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노 대통령이 이해하지 못했듯이 박 시장은 사람과 기업들이 한곳에 포도송이처럼 엉겨붙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울시장이 도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상황이다. 도시의 혼잡은 시인 묵객의 단골 소재였다. 노자조차 그곳엔 먼지가 뽀얗다고 비판하지 않았었나. 산림의 학자들이 개탄해 마지않는 온갖 부도덕은 모두 도시에 속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도시로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든다.
홍콩의 번잡, 뉴욕의 혼란, 베이징의 먼지, 방콕의 더러움, 뭄바이의 무질서는 너무도 유명하지 않나. 더구나 서울서는 코까지 베어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든다. 누구라도 전원 생활을 꿈꾸지만 누구도 쉽게 도시를 떠나지는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도시에 붙잡아 놓는 것일까.무엇보다 도시에는 시골에 없는 자유가 있다. 이민자들이 뉴욕 항구에서 그랬듯이 시골뜨기들은 도회에서의 첫날밤을 자유의 숨을 쉬며 뒤척인다. 그렇다. 도시에는 허드렛 일감이라도 있다. 누구나 자립할 수 있고 계급의 굴종이 없으며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새로운 가치관이 태어나는 곳이 바로 도시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누구나 농촌서 벗어나 도시로 탈출하려고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도회의 익명성조차 가슴을 설레게 하는 요소다. 그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합치고 그렇게 기업을 만들어 낸다. 사람을 구하고 자본을 구하고 지식을 구하며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곳이 도시다. 한국이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은 가난과 체념이 지배하던 농촌을 떠나 떨리는 가슴으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높은 생산성 때문이다. 서울 그 자체가 거대한 협동 체제요 분업 시스템이다.
도시는 기업이 그렇듯이 잘 조직된 분업체다. 아니 고도로 조직된 분업체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인간은 도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도심이 형성되고 상가와 공장과 거리와 골목이 만들어졌다. 도시는 삶의 클러스터다. 도시는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시골의 분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도화된 작업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그게 도시 미학의 본질을 구성한다. 박 시장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