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프랑스 대선의 '불편한 진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
“야, 신발 벗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키가 훤칠한 진행자의 신발을 벗긴다. ‘깔창’을 빼앗긴 진행자는 졸지에 160㎝ 단신이 된다. KBS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코너의 한 장면이다. 곧 드러날 진실을 억지로 숨기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개그 속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듯하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프랑스 대통령 후보들이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을 숨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이른다. 3~4년 안에 100%를 넘을 전망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부는 돈을 펑펑 쓰고 있다. 공공부문 지출은 GDP 대비 56%다. 경쟁국인 독일은 물론 ‘복지천국’ 스웨덴보다 더 높다. 독일은 국민 1000명당 공무원이 50명인데 프랑스는 90명이 넘는다. 과도한 국가부채로 “프랑스가 제2의 그리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나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공공지출을 줄이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이들은 대신 법인세 인상과 ‘부자 증세’를 내세웠다. 사르코지는 작년 말 대기업에 한해 한시적으로 법인세율을 2%포인트 올렸다. 당선되면 최저세를 도입해 면세 혜택을 대폭 줄이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올랑드는 연 수입이 100만유로가 넘으면 75%의 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는 전 세계 최저인 주당 근로시간 35시간을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올리겠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대통령 후보들은 로레알, AXA와 같은 대기업이 프랑스를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정적자 감축과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긴급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프랑스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부딪쳐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모습은 총선을 1주일여 앞둔 한국과 비슷하다.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좌파 야권은 이들을 ‘해체’하겠다고 한다. 여야는 수십조원이 드는 복지정책들을 내놓고는 “부자 증세와 세제개혁으로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선거 뒤 겪어야 할 ‘불편한 진실’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