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詩와 사진에 흐르는 운율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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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집 낸 서울대 59학번 동기 '반세기 우정'
새벽에 만난 달
민병문 시·박용성 사진 / 온북스 / 200쪽 / 1만2000원
반세기를 넘긴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이 시화집으로 영글었다. 민병문 헤럴드경제 고문(73)이 시를 쓰고, 대한체육회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72)이 사진을 붙인 《새벽에 만난 달》이다.
언론인과 기업인으로서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민 고문과 박 회장은 서울대 상대 59학번 동기생이다. 은퇴를 앞두고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던 민 고문이 박 회장에게 시에 어울릴 사진을 부탁했다. 박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진 마니아다. 직접 찍은 야생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할 정도다. 시화집에 실린 사진마다 시의 운율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민 고문의 시는 노년의 일상과 세월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젊은날의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난 노신사의 시선이 자유롭다.
“너를 내안에 가둬두고 싶다/ 너의 자유는 내안에서 만개하리/ 간절한 마음으로 꺾은 한 송이 꽃,/(…)/ 너의 자유는 내 품이 아닌가봐/ 그렇다면 시원스레 풀어주마/너를 내 밖으로 밀어내고 나서/ 내가 도리어 자유를 만끽한다.” (‘동행’)
찬란했던 젊은날을 회상하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얹혀져 멀리 와버린 자신을 위로한다. “슬퍼말라, 겨울 인생들아,/ 그대들 화려한 젊은 날에/ 많이 오만하지 않았던가.// 이제 엷은 추억을 남긴 채/ 소멸의 서러움에 젖어도/ 이미 겪은 무수한 풍상이/ 보석이 되어 위로한다.”(‘위로’)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아직도 시퍼런 청춘이고 날카로운 언론인임을 감추지 못한다.
“바람아, 아 바람아/ 우리 함께 광야로 가자/ 길 없는 길 만들어 가면/ 거기 빛과 소금 있어라.”(‘바람아, 아 바람아’)‘뚝심이 박회장’이란 시가 눈에 띈다. 민 고문이 곁에서 바라본 박 회장 이야기다. 대기업 그룹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 사진 마니아에 중매쟁이로서 엄격하면서도 털털한 박 회장의 모습을 그려 웃음짓게 만든다.
민 고문은 이번 시화집에 대해 “마음은 문학의 광장에 가있으면서 생업으로 신문사 밥을 먹고 마침내 자유인 신분으로 문학에 본격 참여하는 순간을 자축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민 고문은 196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경제부장·논설위원실장·심의실장 등을 지냈으며, 1999년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신문으로 옮겨 헤럴드경제 주필을 지냈다.
박 회장은 발문에서 “민 시인은 상과대학을 가는 바람에 인생 항로가 달라졌지만 고희를 넘겨 원래 영역으로 되돌아온 셈”이라며 “한마디로 문학의 원석이나 다름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또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피사체 뒤에 숨은 진실이 늘 알고 싶었다”며 “그런 점에서 언론이 추구하는 점과 닮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