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원샷하고 내일 오후에 나와"…출근하니 나만 빼고 정위치

직장내 불편한 진실

"넥타이 왜 안 해?" 면박주고선 슬리퍼에 발가락 양말 '꼼지락'
"비전이 없어" 바람 넣은 선배…수년째 부장 옆서 '딸랑딸랑'
"다이어트 하니까 탄수화물 NO"…밥 먹는 양 만큼 회 '폭풍 흡입'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하루에도 수십번 이 질문을 속으로 삼키는 직장인들.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불편한 진실’의 황현희 대사를 직장생활에 패러디해보자. 우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알고 있었던 그 진실이 진실 아닌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우리 김 과장, 이 대리들이 매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진실 아닌 진실들. 아래 사연을 집중해 감상해보자.

◆대체 무슨 말을 믿어야 할까

강 상무는 폭탄주를 마실 때마다 외친다. “오늘 다 죽자. 내 밑으로는 다 내일 오후 출근이야. 명령이다. 안 듣기만 해봐.” 신입사원 심씨는 ‘부서 막내인데 그래도 될까’하다가도 혹시나 싶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오전 10시에 기다시피 출근했다.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다 죽자고 몇 번을 외쳐댔는데,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멀쩡하기만 한 부장이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군기가 빠져가지고…”하며 타박하는 이 불편한 진실. 손바닥 뒤집듯 말이 바뀌는 사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한 달째 야근하면서도 “이것만 끝내면 보름 휴가 갔다와. 지난 여름 휴가도 못 갔잖아”라는 부장의 말을 위안으로 삼던 홍 과장. 오늘 낮 겨우 프로젝트를 끝내고 ‘야근 끝, 휴가 시작’을 외치려는 찰나,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졌다고 부장이 호출하는 이 불편한 진실.

◆“제발…너나 잘하세요”

서 부장은 사내에서 ‘지적질의 왕’으로 꼽힌다. 특히 복장과 소음에 민감하다. 넥타이를 안 매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직원은 절대 그냥 놔두지 않는다. “단추는 왜 풀고 다녀. 목이 굵어서 안 잠기냐.” “립스틱 진한 것 좀 봐라. 쥐 잡아 먹었냐.” “너 혼자 쓰는 사무실이야? 또각또각 힐 소리에 회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러면서 사무실을 누비는 그는 발가락 양말에 삼선 슬리퍼로 ‘부장룩’을 완성했다. 여기에 옆부서까지 들리는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와 공개된 통화내용으로 그의 사생활은 만인이 공유한다. 대체 왜 이러실까. 여직원들에게 ‘술집 아가씨냐’를 운운하면서 밤엔 그렇게 술집 아가씨들을 좋아한다는 불편한 진실까지. 중견 제조 업체에 다니는 사원 김모씨는 입사 이후 첫 술자리에서 한 선배로부터 이런 얘길 들었다. “넌 이 회사 왜 들어왔냐. 뭘 보고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전이 없어.” 싱숭생숭해진 마음을 다잡을 때쯤 다시 한 술자리에서 그 선배는 또 이렇게 말했다. “너 아직 미련이 남았냐. 얼른 다른 회사 알아봐라.” 그 와중에 그들 자리 옆으로 부장이 옮겨 앉았다. 그 선배는 돌연 고개를 돌려 혀 꼬인 소리로 말했다. “부장님의 끈기와 강직함을 본받고 싶습니다. 저도 우리 회사에 뼈를 묻겠심더~.” 김씨는 ‘묻겠다’는 그 선배에게 묻고 싶다. “너, 왜 그러고 사냐.”

◆외면해버리고 싶은 불쾌한 진실

한 건설업체 인사팀 직원들에게 팀장은 ‘공공의 적’이다. 팀장은 오전엔 ‘커담존(커피 자판기 옆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에서 잡담하고 점심 이후론 어디론가 사라져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퇴근 한 시간 전쯤 자리에 돌아와 퇴근 때까지는 직원들의 근태를 질타하고 무능을 탓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지친 팀원들은 팀장을 빼고 가진 술자리에서 “아닌 것은 아닌 거다” “할 말은 하고 살자”고 의지를 다졌다. 다음날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벌떡 일어나 “아침은 드셨습니까, 팀장님”이라고 밝게 외치는 최 과장. 말없이 팀장께 바칠 커피를 뽑는 이 대리. 그러나 정작 팀장의 만면에 미소를 번지게 한 것은 막내 김 사원이었다. “어제 술 드셨죠”라며 수줍은 미소와 함께 내민 숙취해소 음료에 팀장은 ‘센스 만점’이라며 껄껄 웃었다. 의기투합을 하긴 했는데, 하룻밤 사이 반대로 실행에 옮기는 이 불편한 진실.

◆차라리 말을 하지 마

“저, 요즘 다이어트 중이거든요.” 오후 간식 타임에 떡볶이와 순대를 마다하는 105㎏ 거구의 김 과장. 즐겨 마시던 커피까지 끊었다. 덕분에 부서 운영비를 절약하게 됐다고 좋아했던 것도 잠시. 지난 회식 때 삼겹살보다는 기름기 없는 한우를 먹자고 강력히 주장했던 김 과장은 이번주엔 횟집을 추천했다. 오늘은 그냥 마음껏 먹으라며 밥까지 시켜주려는 부장에게 김 과장은 되레 짜증을 냈다. “밥은 탄수화물이라고요. 다 살로 간단 말이에요. 차라리 평생 돼지로 살라고 그러세요.” 머쓱해진 분위기 속, 밥 대신 오로지 회만 ‘폭풍 흡입’한 김 과장은 2차에선 살 찐다며 맥주를 거부하고 양주를 시켜댔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살 뺀다며 부서 돈을 빼 먹는 이 불편한 진실. 남은 것은 다이어트 한 달째 접어든 김 과장의 몸무게가 107㎏으로 늘어났다는 배부른 진실뿐.

주 대리가 다니는 지방 중소기업은 20, 30대 젊은층이 유난히 많다. 젊은 마인드를 강조하는 이 회사 사장은 최근 “구글 같은 회사를 만들어보자”며 열린 공간을 제안했다. 탁 트인 공간에 소파와 TV, 간식 바 등을 설치하고 업무 중에도 가서 쉬거나 아이디어 회의를 하라는 것. 그러나 오가는 사람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이어서 누가 뭘하는지 훤히 다 보여 이 자리는 늘 비어있다. 휴게실만 쉬고 있는 이 불편한 진실. 대체 왜 만든 것일까.

◆퇴근이 퇴근이 아니야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해 여름 대기업 S사에 입사한 강모씨에게 출근 첫날 팀장은 칼퇴근을 종용했다. “역시 좋은 회사라 모든 게 합리적이구나”라고 생각한 강씨. 하지만 퇴근 후 회식자리에서 회사 선배들로부터 진실을 듣고 말았다. 알고보니 그 때가 인사고과시즌이었던 것. 인사고과는 다면평가로 실시되기 때문에 고과철만 되면 부하 직원들을 의식해 상사가 칼퇴근을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소주잔을 건네며 선배가 하는 말에 장탄식이 나왔다. “이번 1주일만 칼퇴근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야근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번주를 즐겨.”

윤정현/고경봉/노경목/김일규/강경민/정소람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