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바보야, 문제는 돈이야!"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
“교수들이 돈을 전혀 모릅니다.”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의 친구라는 분이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연했다. 지난 17일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302호실 앞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에 따르면 해병대 출신인 박 교수는 돈에 관한 한 무심한 사람이었다. 서울교대 교정을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와 유세차량 등 선거비용으로 7억원이나 쓰는 바람에 카드 돌려막기를 할 만큼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졌다. 후보를 사퇴하면 그 대가로 곽노현 후보 측이 선거비용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안이하게 판단했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것이다.이날 박 교수와 함께 법정에 선 곽 교육감은 후보단일화 당시에는 금전적 뒷거래를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 같다. 캠프 측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돈 얘기가 나오자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라는 대의를 논하는 자리에서 돈 문제 따위를 언급하다니’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철밥통 월급마저 깎인 돈잔치

그러나 그 역시 구정물에 발을 담갔으며, 그렇게 건넨 2억원이 덫이 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서울시 교육감직은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교육예산을 집행하는 실로 중요한 자리”라고 강조하면서 후보 매수 혐의로 곽 교육감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 성현의 말씀 때문일까.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경고인데, 돈 문제를 하찮게 보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 근로계약서 없이 입사하거나 옮겨갈 회사의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 채 이직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최근 실태가 일부 드러난 지방자치단체의 꼴불견 역시 돈 문제를 우습게 알다가 큰 코 다친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공사를 맡긴 민간 투자자에게 개통 후 15년까지 예상 운임수입의 70~90%를 보장한 7년 전 협약 때문에 뒷수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엉터리 수요예측만 믿고 사업을 벌였다가 ‘철밥통’으로 통하는 공무원들의 월급까지 삭감할 정도로 곳간이 거덜난 자치단체도 있다. 경전철 빚더미에 깔린 김학규 용인시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땅을 치며 통탄했다. “표를 의식한 민선 지자체장들의 치적주의 때문에….”

주머니 털 공약에 심판을퍼주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집단으로는 국회의원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지금도 여야 가리지 않고 무상복지 시리즈를 써 나가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남발한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앞으로 5년간 최소 268조원이 필요하다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왔다. 5년 동안 매년 54조원씩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데 이는 올해 총예산의 16.5%, 복지예산의 57.9%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도 어떻게 돈을 마련할지 재원 문제를 따져들라치면 딴청을 부리거나 얼버무리기 일쑤다.

앞으로 12월19일 대통령 선거까지 정확히 8개월 남았다. 정당이나 대선 후보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장밋빛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복지니 지역발전이니 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표심을 유혹할 게 뻔하다. 결국은 유권자들 주머니에서 돈 빼내갈 궁리다. 그럴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정색을 하고 ‘계산기를 꺼내라’고 얘기해야 한다. 공약이행을 책임질 담보물을 내놓으라는 운동도 해보면 어떨까.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