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고발해놓고 재판불출석한 국세청직원들

“이런 불출석사유서는 처음 봅니다.”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23부) 425호실. 재판장석에 앉은 정선재 부장판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 부장판사는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당황스럽다”며 검찰석을 향해 “신속한 재판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날은 역외탈세 등 혐의로 기소된 권혁 시도상선 회장(62)의 첫번째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검찰은 권 회장을 조사하고 탈세,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국세청 직원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변호인측과 함께 이들을 하루종일 심문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인 지난 17일 국세청 직원들이 재판부에 팩스로 불출석사유서를 보내면서 재판이 파행을 빚게됐다. 사유서에서 최모 조사관은 ‘지방출장중’이라고 했고, 이모 조사관은 ‘증언을 위한 준비가 부족해서 좀 더 검토후 출석하겠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검찰이 기소한지 6개월이 지났으며, 고발 당사자인 국세청직원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있나“라며 “재판준비에 차질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두 사람에 대한 심문날짜는 한달 뒤인 5월17일로 다시 잡혔다. 정 부장판사는 “오늘 같은 일이 없도록 다음 기일에는 증인을 꼭 출석시켜달라”는 말로 검찰측에 눈치를 주었다. 권 회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18개월째 출국금지 중인데 이런 식이라면 언제 (출국금지가)풀릴지 예상을 못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유럽과 일본 금융회사에서 3조4000억원을 빌렸는데 해운경기로 선박가격이 하락하니 추가담보와 조기상환, 금리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달에 1주일만이라도 출국해 사업체를 돌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처를 요청했다. 재판부도 “출국허가 여부는 법원소관이 아니다“며 검찰쪽 의향을 살폈지만 담당 검사는 ”해지할 수 없다는 점을 여러번 통보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검찰은 2200여억원 탈세혐의와 918억원 횡령 등 혐의로 작년 10월 권 회장을 기소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