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인텔發 M&A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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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미국 인텔이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올라웍스를 약 360억원에 인수했다. 인텔의 한국 기업 인수는 이번이 처음이다. 2006년 설립된 올라웍스는 ‘스캔서치’ ‘푸딩 얼굴인식’ 애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외국의 거대 기업이 인수했는데도 국내 반응은 호의적이다. 여느 때 같으면 기술의 해외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겠지만 그런 얘기도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런 인수가 더 나와 주길 바라는 눈치다. 만약 인텔 아닌 삼성전자가 올라웍스를 인수했어도 똑같았을지 궁금해진다. 특히 대기업 규제,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외치는 정치권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M&A는 혁신 생태계의 핵심시장의 변화가 빨라지면서 신기술에 대한 외부 탐색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배타적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에 빠졌다가는 대기업이라도 한 방에 가는 세상이다. 외부 탐색능력이 곧 기업의 ‘기술지능 지수’가 되고 있다. 인텔에서는 그 촉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인텔캐피털이다. 일종의 ‘기업 벤처캐피털(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이다. 투자를 통해 재무적 이익을 기대하는 ‘일반 벤처캐피털’과 달리 모기업을 위한 신기술 탐색 목적이 강하다. 올라웍스도 인텔캐피털이 지분투자를 했고 이게 인수로 이어진 케이스다.
인텔캐피털은 IT분야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로 꼽힌다. 올라웍스 말고도 여러 한국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인수 사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텔의 인수는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기술창업 기업들에 주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로 인해 피인수기업의 기술가치가 평가받기 시작하면 일반 벤처캐피털의 유입 또한 촉진될 것이다. 그 결과 기술창업이 더욱 용이해지면 이게 곧 혁신의 선순환이다.
벤처캐피털이 발달한 미국에서 인수·합병(M&A)은 자금 회수의 주된 수단이다. 최초 기업공개(IPO)보다 M&A가 벤처캐피털을 끌어내는 더 큰 힘이다. 특히 주식시장이 별 볼일 없는 경기 침체기에 거의 유일한 출구 역할을 하는 것도 M&A다.국내에서 벤처 바람이 좀체 재현되지 않는 것도 M&A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 지난 벤처 붐 때 치솟던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순간 오로지 상장만을 노리던 벤처기업, 벤처캐피털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당시 정권은 대기업을 규제하고 벤처를 그 대안세력으로 키우려 했다. 상장 대신 M&A라는 또 하나의 출구를 정부 스스로 막아놨던 것이다. 벤처를 키웠다는 정권이 결국 벤처를 죽인 정권이 되고 말았다. 그 실패한 이분법적 기업정책의 유혹에 다시 빠져들고 있는 게 지금의 정치권이다. 한쪽에서는 기술창업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자금줄이자 또 하나의 출구인 대기업의 손발을 묶겠다고 난리다.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대기업 보유현금 끌어내야
M&A는 대기업의 막대한 보유현금을 끌어낼 주요 통로다. 차라리 M&A를 통하면 대·중소기업 간 인력 스카우트 논란이나 기술유출 시비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M&A가 활발히 일어나면 기술가치 평가도 그만큼 선진화될 것이다. 중견기업 육성 얘기도 결국은 M&A에 달린 문제다. 정부는 인위적 동반성장을 떠들 게 아니라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고 그 걸림돌 제거에 힘을 쏟는 게 백 배 낫다. M&A를 통해 시장 주도 벤처 붐이 오면 기술창업 기업, 대기업 모두에 이롭다. 인텔발(發) M&A가 국내 벤처에 봄소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면 좋겠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