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銀이 가계부채 경고할 자격 있나

한국은행이 가계부채가 이미 소비를 위축시킬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한은이 지난 19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이어 또다시 가계부채 심각성을 제기한 것이다.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어도, 경제의 펀더멘털을 갉아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게 한은의 경고다. 굳이 한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작년 말 912조원에 달한 가계부채에 대해 범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경계하고 연착륙에 만전을 기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새삼스런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은 일언반구 없다가 이제 와서 정색하는 데는 황당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가계부채가 해마다 60조원씩 폭증해 7년 새 두 배가 되는 동안 한은은 별로 한 것이 없다. 물가가 다락같이 오른 지난해 하반기에도 오로지 금리동결로 일관했을 뿐, 다른 어떤 노력도 보여준 것이 없는 한은이다. 시장과 경제주체들에 시그널을 줄 수 있는 다른 수단(지준율 조정 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모두 녹슨 칼로 만들고 말았다.작년 한은법 개정에 따라 한은 설립목적에는 물가안정과 함께 금융안정이 추가됐다. 작년 소비자물가는 한은 물가안정목표(2~4%)의 상단에 턱걸이했지만 물가통계 개편 이전 기준으론 4.4%에 이른다. 한은이 물가에 손놓고 있는 동안 완장 찬 정부부처들이 1970~80년대식 물가 찍어누르기로 일관한 게 지난 1년간 물가대책이다. 더구나 금융시장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볼 수도 없다. 금융안정의 한 요소인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는 비정상적인 마이너스가 된 지도 오래다. 심지어 장기금리(국고채 3년물)가 단기금리(CD 91일물)를 밑도는 금리역전 현상이 7개월이나 이어지기도 했다.

국가가 한은에 독립성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것은 통화가치 안정을 통해 물가안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라는 취지다. 시장에선 한은의 자세와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전망기관들은 금리조정이 빨라야 연말이라는 전망을 공공연히 내놓고 있다. 언제나 말로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우려하는 한은이다. 금리인상에 실기하고 신뢰 또한 잃고 말았다.